동아일보 자료사진
‘탄핵의 추억.’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는 올해 정치권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뒤흔든 메가톤급 태풍이었다. 그 한복판에서 탄핵정국을 주도했던 최병렬(崔秉烈·사진)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엄청난 후폭풍 때문에 정치적 타격을 받아야 했다.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그의 자택을 찾았다. 그는 역사의 폭풍이 여의도에 휘몰아치던 ‘그때 그 순간’을 담담히 회고했다.
최 전 대표는 탄핵의 요건이 충족됐지만 막판까지 가결 정족수(181석)를 채우지 못해 애를 태웠던 일부터 이야기를 꺼냈다. 공천에 탈락한 의원들과 소장파들이 탄핵에 소극적이었던 만큼 “내심 ‘설마 되겠느냐’고 생각했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급반전했다. 표결 직전인 3월 11일 17대 총선과 자신의 재신임을 연계하면서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을 비꼰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과 남 전 사장의 한강 투신자살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크게 자극했던 것.
그는 “이 때문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뭉쳤고 자민련까지 가세해 탄핵안이 가결됐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탄핵의 역풍으로 인해 한나라당은 4월 15일 17대 총선에서 원내 1당의 지위를 내놓아야 했다.
그는 “아깝게 총선에서 떨어진 소속 후보들에겐 정말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다. 당을 수렁에서 건져낸 박근혜 대표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에게선 난파선의 선장과 같은 짙은 회한이 묻어났다.
총선 직후 미국을 한 달 정도 다녀온 그는 자택에서 책을 읽거나 지인들과 골프를 즐기며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를 향한 비판과 특유의 독설(毒舌)은 여전했다.
“지금 나라가 어떤 지경이냐. 국가 안보는 위험에 처해 있고, 서민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느냐.”
그는 노 대통령의 ‘실정 사례’를 거론하면서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전처럼 똑같이 탄핵을 할 것이다. 대통령에게 탄핵사유가 있다면 탄핵은 백번이라도 옳다고 본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또 “방송이 탄핵의 부당성에만 초점을 맞춰 집중 보도해 국민의 정서가 흔들린 것 아니냐”고 탄핵 방송의 편파성을 문제 삼기도 했다.
요즘 그는 당시 상황에 관한 회고록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한편 그는 특히 탄핵이 성사되면 자신이 대통령 보궐선거에 나가려 했다는 당 일각의 시각에 “당시 나는 당 대표직을 사실상 내놓은 상태였는데 무슨 소리냐.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흥분했다.
최근 당내에선 그의 내년 재·보선 출마설이 파다하다. 다수의 의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도 재·보선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나는 ‘정계를 은퇴한다’고 하진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