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에게.
날렵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당신을 생각하오.
영화 ‘바톤 핑크’의 젊은 극작가가 작업하던, 또는 폴 오스터의 에세이 ‘타자기를 치켜세움’에 등장하던 그 옛날 수동식 타자기였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오.
노트북의 여러 구멍 중 하나에 꽂은 헤드폰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소.
무한궤도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날 때’, 김진표·이준·김조한이 함께 부른 ‘샴푸의 요정’, 터보의 ‘회상’, 스티비 원더의 ‘Lately’,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인터넷에서 다운 받은 옛날 노래들이오.
예년과 달리 올해에는 유독 크리스마스 캐럴이 자주 들려오는 것 같소. 그 이유를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싸이월드와 휴대전화 컬러링 이야기를 합디다. 자신만의 글과 그림과 음악을 전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오래된 것의 유통 기간은 사라진 듯하오. 기억과 경험의 저장고에서 무엇을 꺼내 쓸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요.
S, 당신은 올해의 키워드였던 ‘감성(Sensability)’이오.
1월부터 한 해 동안 언뜻 보일까 말까 하는 당신의 모습을 이 지면을 통해 빠른 연필 크로키처럼 그려 내고 싶었소. 삼성경제연구소가 올해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꼽은 싸이월드도 당신을 찾기 위한 나의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오.
그것은 사람들 속에 내재한 당신의 재발견이었소. 사람들은 마음을 눈으로, 다시 카메라로 옮겨 구상화했소.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같은 사람들의 글에서는 다양한 화법과 사고방식이 사상의 공개 경연장으로 뛰쳐나왔소.
흔히 예술적이거나 감상적인 독특한 감수성을 당신으로 생각하지만 당신의 사전적 의미는 ‘느낌을 받아 들이는 성질’로 실은 훨씬 방대했소. 처음엔 낯설던 당신과 어느 정도 친해진 사람들은 당신에게 또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를지도 모르겠소.
행여 우리가 당신의 피상만 이해하고 있다면 미안하오, 그리고 사랑하오. 당신은 그리움과 아름다움을 일깨워 주었소. 이제 새로운 여행을 떠나려 하오. 또 다른 당신을 찾아. 2004년 어느 늦은 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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