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대통령 탄핵…17代총선 후폭풍▼
3월 12일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과 의회 권력이 충돌한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탄핵 역풍은 나라를 뒤흔들 만큼 거셌다. 이 와중에서 방송은 친여(親與) 편파 시비에 휩싸였다. 4·15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152석)을 차지했다.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은 원내 2당(121석), 민주당은 미니 정당(9석)으로 전락했다. 헌법재판소는 5월 14일 탄핵을 기각했고 노 대통령은 집무에 복귀했다.
▼新행정수도 건설법 위헌 결정▼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10월 21일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결정 이유에서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사실은 관습헌법”이라며 사상 처음으로 ‘관습헌법’ 논리를 펴 큰 논란이 일었다. 헌재의 결정으로 수도 이전은 전면 중단됐다. 그러나 충청권의 거센 반발로 진통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수능 휴대전화 不正행위 적발▼
올해 수능시험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규모의 부정행위와 대리시험이 적발됐다. 374명이 입건되고 312명의 성적이 무효 처리됐다. ‘대물림’에다 학부모와 학원장의 개입 사실까지 드러나 충격을 줬다. 입시관리의 부실이 지적됐고 수능 존폐론까지 제기됐다. 앞서 교육인적자원부는 내신 반영 비중을 높이고 수능을 등급제로 바꾸는 내용의 2008학년도 대입 개선안을 내놓았다.
▼황우석교수 인간배아복제 성공▼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黃禹錫·51) 교수팀은 2월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의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척수마비 파킨슨병 등 각종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줄기세포를 얻는 방식이어서 환자에게 줄기세포를 이식할 때 면역거부 반응이 없다는 게 장점이다.
▼국군 자이툰부대 이라크 파병▼
2월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평화재건활동을 목표로 한 3600명 규모의 국군 자이툰부대가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파병됐다. 베트남전 이후 최대 규모의 파병이었다. 그러나 파병 직전인 6월 이라크 무장세력은 한국의 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김선일 씨를 납치, 살해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2월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자이툰부대를 ‘깜짝’ 방문했다.
▼끝없는 불황… 불확실성의 시대▼
2년 연속 불황이 이어졌다. 세계 경제의 호조로 수출만 늘었을 뿐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는 부진했다. 기업들은 긴축경영에 돌입해 감원 한파가 불어 닥쳤고 청년실업은 만성적인 사회문제로 굳어졌다. 경제정책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당, 행정부의 정책 갈등은 불확실성을 고조시켰다.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4.6∼4.7%에 그칠 것으로 예상돼 7%대로 추정되는 아시아 평균치를 크게 밑돌았다.
▼‘용사마’ 열풍에 日열도 들썩▼
배용준은 올해 일본에서 최고의 대중문화 상품으로 부상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가 위성과 지상파로 드라마 ‘겨울연가’를 방영하자마자 ‘용사마’ 열풍이 일었다. ‘겨울연가’의 산업 효과는 2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호감도도 크게 증가했다. ‘용사마’ 열풍은 한류(韓流), 즉 한국문화가 가진 유무형의 가치를 보여준 사례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단속▼
9월 23일 0시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돼 두 달 동안 하루 평균 200명을 웃도는 6791명의 성매매 사범이 적발됐다. 성매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으며 성매매 피해여성의 인권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왜곡된 형태의 성매매가 여전한 데다 일부 업주와 성매매 종사자들이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항의집회를 여는 등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다.
▼북한 용천역 폭발 대참사▼
4월 22일 평북 용천군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150여 명이 숨지고 1300여 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폭발은 반경 1km 지역이 폐허로 변할 정도로 강력했다. 북한은 이틀 만에 이례적으로 사고 소식을 발표하고 외부의 지원을 요청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용천은 새 도시로 거듭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겨냥한 테러였다는 설도 무성했다.
▼‘뉴 라이트’ 태동… 각계 확산▼
수구보수-강경진보 간 대립으로 이념 갈등이 심화되자 ‘말 없는 다수’가 행동에 나섰다. 11, 12월 본보 기획 시리즈로 점화된 ‘뉴 라이트’ 운동은 학계 종교계 등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됐다. 전향한 386세대들이 ‘자유주의연대’를 발족했고 ‘기독교사회책임’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의 지향점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 비판적 보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