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법안 처리’ 문제가 여야의 이견으로 계속 표류하고 있다. ‘정치에 4대 법안만 있고 민생은 없다’는 비판이 일 만큼 여야는 9월 정기국회 때부터 이를 놓고 계속 대치해 왔지만 임시국회가 막바지에 이른 현재까지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24일 4인 대표회담도 별 성과 없이 끝났다.
▽국보법 오리무중=열린우리당 민병두(閔丙두) 기획위원장은 24일 “국보법과 관련해 두 가지 대안이 검토될 수 있다”며 “연내처리 등의 방식이 바뀌거나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당이 ‘국보법 폐지’라는 당론을 변경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돼 결국 대체입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민 위원장의 발언은 곧바로 역풍에 직면했다. 김현미(金賢美) 대변인은 이날 상임중앙위원·기획자문위원 연석회의가 끝난 뒤 “4대 법안을 연내에 처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우리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며 “민 위원장은 당론에 밀려 제안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민 위원장이) 일부 제안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 당론의 수위를 대체입법으로 낮춰서라도 올해 안에 처리를 마무리할 것인지, 아니면 폐지 당론을 고수한 채 내년으로 처리시기를 늦출 것인지 결정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이 때문에 열린우리당 의원총회가 예정된 27일이 여야협상의 ‘데드라인’이 될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 발언=국보법에 관한 노 대통령의 발언도 혼선을 부추긴 한 요인이었다. 노 대통령은 9월 방송에 출연해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으로 ‘개정이냐 폐지냐’를 놓고 대립하던 열린우리당 분위기는 급속히 폐지 쪽으로 기울었다. 국보법 폐지를 요구하며 농성 중인 소장파 의원들이 당 지도부에 한나라당과의 4인 대표회담 중단과 당론 관철을 요구한 것도 사실은 노 대통령이 뿌린 씨앗이었다.
그러나 내년 한 해의 패러다임을 ‘경제 다걸기(올인)’ ‘뉴 데탕트(화해)’에 맞추고 있는 노 대통령은 11월 초 “산이 높으면 돌아가라”는 말로 입장선회를 시사했고, 23일 열린우리당 중진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는 “오랫동안의 숙제였는데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겠느냐”고 말함으로써 현실론을 수용했다.
▽과거사법도 오락가락=여야는 과거사진상규명법안을 놓고 진통을 거듭했다. 24일 낮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 문병호(文炳晧) 의원과 한나라당 유기준(兪奇濬) 의원이 실무협상을 벌여 진상규명위원회의 위상과 위원 선출 및 자격 요건, 조사 범위와 활동 기간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잠정 합의 수준에 이르렀다.
잠정 합의안은 쟁점별로 여야가 조금씩 양보한 내용으로 이날 오후 여야가 합동 기자회견을 가질 것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그 때문에 4대 법안 중 첫 단추를 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지만 두 의원이 이를 각 당 지도부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문 의원은 “오늘 중으로 합의안을 발표할 단계까지 못 갈 가능성이 크다”며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고, 유 의원은 “개략적인 합의가 가능한 분위기였는데, 여당 지도부가 실무 합의 내용을 추인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모처럼 이뤄진 잠정합의는 없던 일이 돼버렸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