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마라톤 완주 201회를 달성한 임채호 씨가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자택 앞에서 아침 조깅에 앞서 몸을 풀고 있다. 원대연 기자
“통일로를 따라 임진각을 향해 뛰다 보면 옆으로 들판과 새로 지은 아파트들이 계속 펼쳐집니다. 한없이 달리다 보면 모든 잡생각이 사라집니다. 임진각까지 풀코스를 뛰고 나면 힘이 들었다는 생각보다는 일단 오늘도 뭔가를 해냈구나 하는 보람에 한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25일 오전 9시 반 서울 은평구 구산동 751번 버스 종점 앞.
영하 6도의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임채호 씨(65·서대문구 남가좌동)는 반팔 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장딴지 근육이 울툭불툭 튀어나왔다.
잠시 후 임 씨는 임진각까지 약 44km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도전이지만 그는 쉬지 않고 달려 4시간 20분 만에 임진각에 도착했다.
이번이 횟수로 201번째 완주한 ‘풀코스’(42.195km 이상)다. 이 기록은 국내 공식 마라톤 대회에서의 완주뿐만 아니라 임 씨 혼자 뛴 것까지 포함한 횟수다.
2남 1녀의 자식들을 다 결혼시키고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는 임 씨는 2001년 한국판 기네스북에 157회 마라톤 풀코스 완주자로 등재된 국내 최고령, 최다 완주 기록 보유자다.
임 씨는 1975년 한국 거북이마라톤대회에 참가해 7km를 달린 것을 계기로 30년간 쉬지 않고 달려 왔다. 1988년부터는 임진각까지 매달 1번꼴로 달렸다.
“부모님, 누나, 남동생 모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사실 저도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매년 감기를 달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 오른쪽 무릎 신경통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요.”
건강을 위해 선택한 운동이 ‘인내심만 있으면 되는,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운동인 마라톤’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2, 3일 달리지 않고 쉬면 오히려 팔다리가 쑤시고 소화도 안 되는 ‘마니아’가 됐다.
“운동을 결심했다면 하루도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해요. 하루를 빠지면 결국 다음 날에도 하기 힘들지요. 마라톤도 마찬가지예요. 뛰다가 힘들면 걸어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앉아서 쉬지 않아야 합니다. 앉게 되면 다리에 쥐가 나기 십상이고 결국은 도중에 포기할 수밖에 없지요.”
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동네 주변 10km를 뛴다. 또 오후 5시엔 서대문구 연세대 정문에서 출발해 10km를 뛴다. 매일 20km를 달리는 것.
임 씨는 “자식들이 마라톤 완주 200회도 돌파했으니 나이를 생각해서 그만 쉬라고 한다”며 “그러나 평생 달리기가 취미인 사람에게 달리기를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이상 살 낙이 없다”고 웃었다.
임 씨는 내년 3월 13일에 열릴 동아일보 주최 서울국제마라톤을 비롯해 3월에 2개의 국내 대회에 참가해 완주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이진한 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