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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뉴스인물]윤영관 전 외교부장관

입력 | 2004-12-26 18:50:00

동아일보 자료사진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 오전.

이미 종강해 학생들이 거의 다 빠져 나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캠퍼스는 한적했지만 외교학과 교수인 윤영관(尹永寬·사진)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연구실 문 앞에는 ‘재실(在室)’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는 기말시험 답안지 채점에 한창이었다.

“2학기 강의 ‘국제정치학개론’에 수강생이 200명 넘게 몰렸어요. 제가 독특한 실무 경험을 갖고 있으니까 생생한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습니다.”

영어 원서를 많이 읽게 하고, 과제를 많이 내주기로 유명한 윤 교수의 강의는 1990년대 외교학과 졸업생에게는 ‘기피과목 1호’. 그러나 ‘책과 세상 사이의 넓고 깊은 골’을 메우고 싶어 하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인기 폭발이라고 한 대학 관계자가 전했다.

‘한국 외교의 현실과 국민 인식의 격차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장관을 지낸 이후 그의 강의와 연구, 저술 계획은 모두 이 주제에 맞춰져 있다.

윤 교수는 내년 1월 미국으로 출국해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에서 ‘안식년(1년)’을 보내면서도 ‘한국 국력에 걸맞은 외교의 길’을 찾는 일에 천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40여분간의 대화 도중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를 얘기하면서 기자에게 ‘과거’를 물을 기회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았다. 11개월이 채 안 되는 장관 생활을 마감한 1월 15일 직후부터 본보에서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번번이 거부했다.

이날의 약식 인터뷰는 ‘근황만 묻겠다’는 조건을 달아 성사된 것이었다. ‘방어벽’을 뚫고 몇 가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장관 교체의 직접적 원인이 됐던 ‘외교부 간부의 노무현 대통령 폄훼 발언’ 파문에 대해 그는 “마땅히 내가 책임졌어야 할 불미스러운 사건이었다”고 짧게 답했다.

이어 “외교는 밖의 상대(외국)도 있지만 안(국내)의 이해집단과의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이 ‘윤 장관 말대로 했더니 (진보 진영의) 지지자가 다 떨어져 나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묻자 “어려운 질문”이라며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러나 ‘외교부 개혁에 소극적이지 않았느냐’는 지적에는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북한 핵문제와 주한미군 감축 같은 어려운 과제가 삼중사중으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조용한 개혁’을 택했다. 나중에 노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한 오해를 풀었다.”

오전 11시 반경. 인터뷰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향해 함께 걸으며 “장관을 1, 2년 더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최근 외교부 장관 평균 임기가 1년이라는데 ‘평균’ 하면 된 것 아닙니까.” 그는 또 웃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