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역시 얼음과 눈의 계절이다. 미끄러운 얼음판이 곤혹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썰매나 스케이트를 타던 어린 시절의 즐거운 추억을 떠올려 주기도 한다. 얼음은 왜 그렇게 미끄러운 것일까?
교과서에는 얼음에 가해지는 압력이나 얼음 위에서 물체가 움직일 때 발생하는 마찰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압력을 가하면 얼음의 녹는점이 내려가 얼음이 녹게 된다. 이런 ‘압력 녹음’ 현상은 1849년 영국의 캘빈 경이 처음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압력이 1기압 높아지면 얼음의 녹는점은 겨우 0.01도 내려갈 뿐이다. 수백 기압의 압력이 가해져도 녹는점은 겨우 2∼3도 내려가는 것이 고작이다.
얼음에 가해지는 압력이 매우 크고 얼음의 온도가 너무 낮지 않아야만 압력으로 인해 얼음이 녹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추워서 얼음의 온도가 매우 낮은 날에도 얼음이 미끄러운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스케이트의 경우에는 날이 좁아서 얼음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지기는 하지만 여전히 ‘압력 녹음’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한다.
영국의 보든과 휴즈는 1939년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찰 녹음’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마찰 때문에 얼음이 미끄럽다는 주장은 얼음판에 가만히 서있어도 미끄럽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에 대해 설명할 수가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마찰열도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음이 미끄러운 진짜 이유가 밝혀진 것은 불과 20년 전이었다. 미국의 추와 다시는 이온 빔을 쏘아 얼음 표면을 관찰했다. 그러자 얼음 표면이 액체처럼 쉽게 움직이는 물 분자층으로 덮여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액체나 고체의 물 분자들은 내부에서 비교적 강한 ‘수소결합’으로 연결돼 있는데, 표면에 노출된 물 분자에는 단단하게 결합할 수 있는 이웃이 없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사실 이런 ‘표면 녹음’은 150년 전에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가 눈송이끼리 녹으면서 서로 달라붙는 모습에서 이미 짐작했던 것이다. 원자나 분자의 존재도 몰랐던 시대에 그의 통찰력은 대단히 예리한 것이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duckhwan@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