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개설서를 모두 출간한 신형식 교수는 27일 삼국의 역사를 종합한 삼국통사를 쓰고 있다고 밝혔다. 신원건기자
“고구려의 호방한 기상이나 백제의 개척정신도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자산이지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신라의 응집력과 외교력입니다. 삼국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1000년의 세월 동안 왕조를 유지한 그 저력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자산이지요.”
최근 ‘신라통사’(주류성)를 펴낸 신형식 상명대 초빙교수는 신라사(1985년), 백제사(1992년), 고구려사(2003년)를 모두 펴낸 원로 사학자다. 20여 년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해 상명대로 옮겨갔다.
신 교수는 특히 고구려사 연구를 위해 10여 년간 중국을 수없이 오가면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의 실상을 꾸준히 국내에 알려 왔다. 또한 백산학회 회장으로서 간도 등 북방영토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런 그가 새삼 ‘신라통사’를 펴낸 데는 고구려와 백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한국의 민족적 정통성을 지킨 신라가 외면받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몫을 했다.
“고구려사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고구려연구재단이 만들어졌고, 백제사 연구기관도 5곳이나 됩니다. 하지만 신라 연구소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운영하는 한 곳뿐이지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바람에 영토가 줄었다는 반감이 은연중에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 교수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외세(당나라)를 끌어들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것은 대내적으로 지도층이 멸사봉공을 솔선수범해 국민이 국가사업에 적극 참여하도록 한 공민화(公民化)를 삼국 중에 가장 먼저 이뤄냈고, 대외적으로는 동북아의 세력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절묘한 외교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김춘추와 김유신을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와 몰트케에 비유하면서 ‘나당(羅唐)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정벌한 것’이 아니라 ‘신라가 당을 이용해 삼국을 통일했다’라고 역사기술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신라의 1000년 지속의 비결 중 하나가 경주라는 수도를 지키면서 이를 끊임없이 보완했기 때문이라는 독특한 주장도 펼쳤다.
“고구려는 평양으로 천도했다가 중국과의 기세 싸움에서 밀렸고, 백제는 한성을 빼앗긴 뒤 공주-부여로 계속 천도하면서 쇠약해졌습니다. 반면 신라는 통일 이후에도 수도를 옮기지 않고 5소경(小京)제도를 통해 수도의 기능을 분산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수도 이전보다는 그 기능을 분산하는 방안을 연구해야지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