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높은 탑이 정말 가능합니까?”
“네, 가능합니다.”
A G 에펠의 열정과 확신에 찬 눈빛은 결국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늘 회의와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누군가는 이룰 수 있는 법. 오늘날 파리의 한복판에 우뚝 서서 센 강을 바라보고 있는 에펠탑은 그렇게 탄생했다.
유명한 문호 모파상으로부터 두고두고 혹평을 받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에펠탑’은 프랑스의 중요한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지 않았는가.
현상은 아주 진부하지만 의미는 늘 새롭게 존재한다. 희망과 꿈이라는 에너지는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시키고 활동하게 하는 살아 있는 생물체다.
고백하자면 나도 처음부터 이런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6년 청승맞게 비가 내리던 어느 여름날. 종교기관에서 홍보업무에 종사하던 나는 진로를 바꿔 전시기획의 세계에 도전하기로 했다. 별다른 계기는 없었다. 면접하기로 한 전시기획사 로비에서 나는 정수리 한가운데 환한 빛이 밝혀지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로비에 진열된 인형들 때문이었다. 인류의 기원이라고 할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피테칸트로푸스의 엉거주춤한 형상을 담은 유리강화플라스틱(FRP) 인형들이었다. 나는 완전히 딱 걸려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처럼 일에 몰두했다. 졸린 눈으로 부옇게 밝아오는 도시의 아침을 참 많이도 맞이했다.
그 뒤 수많은 전시기획 프로젝트를 거쳤고,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마다 접하는 새로운 문화가 즐거웠다. 대가(大家)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됐고, 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 신기하고 가슴 벅찼고 신비로웠다. 실패도 많았지만 실패조차 배움으로 받아들일 만큼 즐거웠다.
“상상하라. 만들 것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말이다. 고도의 기술력과 자본의 풍족함에서 비롯된 자신감의 표현이겠지만, 이제 나는 믿는다. 의미는 다르지만 결과에는 동의한다.
요즘 한 지방자치단체의 건강체험 엑스포를 계획 중이다. 대체의학을 화두 삼아 건강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전시기획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문화적 가치’를 탄생시키는 일은 우리 사회에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존재하지 않았거나 아주 미미하게 존재했던 현상을 ‘친근한 개념’이 되게 하는 일은 힘든 만큼 가치가 있다. 나는 사람들의 성향과 트렌드를 분석하고 호오(好惡)를 살펴보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이에 맞는 의미와 주제를 가진 전시기획을 통해 사람들에게 ‘방향성 있는 꿈’을 심어주고 싶다. 그것도 가랑비에 옷이 젖듯 아주 자연스럽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꽤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내 가능성의 열쇠를 나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산다는 것은 즐겁다. 물론 그 밥그릇의 크기와는 무관한 이야기지만….
▼약력▼
1960년생으로 성신대 신학과를 중퇴했다. 현재 프리랜서로 엑스포 및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정회원이다.
황준호 전시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