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문화계 각 분야 종사자들은 새해 포부와 계획들로 분주합니다.
올해 활약이 기대되는 문화계 인물들이 털어놓는 계획과 다짐을 시리즈로 들어 봅니다.》
재미 설치작가 서도호(42·사진) 씨가 자신의 첫 개인전을 가진 것은 2000년, 뉴욕에서였다. 그는 이듬해 베니스비엔날레, 2년 뒤 이스탄불비엔날레 등을 통해 세계 화단에서 주목받았다. 지난해 말,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2004년에는 너무 바빴다”고 했다. 2월 마드리드(스페인)와 케미(핀란드), 4월 댈러스와 워싱턴(미국), 5월 마이애미와 뉴욕(미국), 아테네(그리스), 8월 틸부르흐(네덜란드), 11월 예테보리(스웨덴) 등을 오가며 전시회를 가져 한 도시에 한 달 이상 머문 적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새해 벽두인 이달 중순과 3월 두 차례 일본 도쿄 전시를 시작으로 6월 필라델피아(미국), 9월 토리노(이탈리아), 11월 가나자와(일본)를 거쳐 12월에는 국내 개인전(날짜 미정)까지 잡혀 있다.
그는 요즘 “신작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서 씨는 서로 다른 문화권을 넘나들며 길어 올린 인문학적 성찰을 설치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미국 생활 초반기에 자신의 뉴욕 아파트와 서울 성북구 성북동 한옥집 기둥, 지붕, 가구, 계단, 세면대, 변기까지 공간과 사물을 통째로 천으로 박음질해 전시장으로 옮긴 ‘집’ 연작으로 명성을 얻었다. 뉴욕 평단은 “글로벌 시대 ‘유목민’의 초상, 혹은 정신적 미아가 돼버린 현대인들의 긴장과 불안을 담았다”고 호평했다.
지난해 4월 미국 뉴욕 니만 머핀 갤러리에서 선보인 작품 ‘낙하산 병(兵)’의 설치모습. 사진 왼쪽의 안 보이는 곳에 마네킹 낙하산 병사가 낙하산 실들을 움켜쥐고 있다. 지상에서의 안착, 생존, 인간관계의 망을 뜻한다. 사진제공 서도호 씨
그는 “사실 유목이라기보다 ‘관계’와 ‘소통’”이라고 말했다. 서른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이국생활에의 적응, 거기서 수반되는 소외와 외로움, 그 속에서 발견한 새로운 나, 타인, 타 문화…. 이들과의 관계, 소통에 대한 천착이 대표작 ‘집’연작이나 ‘낙하산 병’(큰 낙하산 천에 지인 3000여 명의 이름을 실로 박음질한 작품)에 담겨 있다. 작가는 올해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 신작들을 선보인다.
인종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소형 플라스틱 인형 수만 개를 촘촘히 붙이는 ‘스크린(Screen)’은 타인의 범위를 깊고 넓게 확장한 작품이다. 한옥 문 2개를 푸른색 투명 천으로 똑같이 만들어 위아래로 붙여 설치하는 ‘반영(Reflection)’은 ‘소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문’이라는 구상적 상징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물 위에 비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반영’은 “과연 우리가 인식하는 실체란 무엇인가”라는 다분히 철학적인 질문을 건축적 이미지로 바꿔본 첫 시도이다.
사실 서 씨만큼 ‘넘나듦’의 경험을 한 작가도 드물다. 사람들은 그가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는 늘 지름길이 아닌 우회로를 택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동양화 석사학위까지 받고 도미해 다시 학부부터 공부했고 전공도 서양화로 바꿨다가 예일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택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 미국 유럽 아시아를 돌아다니며 전시를 해 온 그에게 ‘한국적’ 혹은 ‘세계적인 것’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깊은 성찰이 담긴 답이 돌아왔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내 생각이 지금 얼마만큼 타인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내 안에 있는 정신적 기반을 부정하지 않고도 세계 무대에서 내 땅과 내 삶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세대입니다. 결국 인간은 성, 인종, 계층을 초월해 생로병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반적 존재이면서도 경험이 다른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이런 삶의 다양한 지층을 따뜻하게 껴안는 일은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일 수 있는 상상력으로 가는 열린 시각의 단초지요. 이것을 작품의 영감으로 삼아 어떻게 공간에 표현할 것인가, 올해에도 지속될 저의 화두입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