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길(왼쪽)-황장엽씨
97년 2월12일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황장엽 북한 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의 망명 전모가 밝혀졌다. 황비서가 북한 측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망명할 수 있었던 데는, 망명 사건 발생 2년 전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 사업가 백영중씨가 써준 메모가 큰 역할을 했다.
95년 9월 97세의 노모를 만나기 위해 방북했던 백씨는 북한 측 압력으로 ‘50만에서 100만 달러를 내놓겠다’는 메모를 써주었는데, 망명 직전 일본을 거쳐 베이징에 온 황비서는 “백씨로부터 이 돈을 받아와야 한다”며 감시자를 따돌리고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로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사건 발생 2년 전부터 비밀리에 황비서를 만나 북한 민주화 방안을 논의해왔던 북한 민주화협의회장 이연길씨(李淵吉, 77)가 1월3일 발매된 주간동아 468호에 털어놓음으로써 드러났다. 이씨는 또 “원래 황비서는 일본 체류중 망명하기로 했으나 조총련측의 감시가 심해 실행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또 이 증언에서 황비서가 일본에 가기 전 베이징에 나왔을 때 망명을 결심하자, 이를 알고 달려온 안기부의 해외공작 책임자가 황비서와 망명 방법에 대해 논의한 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안기부측은 황비서가 일본에 왔을 때 일본어로 ‘일본 정부에게 협조를 요청 한다’는 각서를 써 이씨에게 건네주며, 황비서의 서명을 받아달라고 한 사실도 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씨에 따르면 망명 전 황비서는 모스크바 등지에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사상이 아니라) 인본주의 사상이다”는 요지의 연설을 했는데, 이것이 평양에 알려져 노동신문이 사설에서 비판하고 나서자 망명을 결심했다고 한다. 황씨는 이씨의 증언에 대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북한 민주화를 위해 진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