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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아야 일도 잘해'…'펀 경영'도 스트레스

입력 | 2005-01-03 14:50:00


"주말에 가족 여행을 자주 가다 보니 감당하지 못할 만큼 지출이 늘었다."

"주말에 뭐할까 고민하거나 아이에게 시달릴 생각을 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한 시중은행 직원들에게 주5일(40시간)근무제 시행 이후 달라진 점을 물었더니 이런 하소연들이 쏟아졌다.

최근 '잘 놀아야 일도 잘 한다'는 취지에서 직원들의 여가와 문화 활동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이른바 '펀(fun) 경영'을 도입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주5일근무제는 직장의 펀 경영을 가정에 접목할 수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적지 않은 직장인들은 '주5일 증후군'에 시달린다고 호소한다.

명지대 대학원 여가정보학과 김정운(金珽運) 교수는 "미리 준비하지 않은 여가는 재앙이 될 수 있다"며 "여가의 내용과 비용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가 활동은 돈 먹는 하마(?)=A은행 김모 차장의 새해 결심 목록에는 '여가비용 절반 이하로 줄이기'가 포함돼 있다.

주5일근무제 이후 매주 한 차례 가족과 주말 나들이를 '의무적'으로 가다보니 월 여가비용이 50만 원이나 돼 이처럼 늘어난 지출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

본보가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주부 고객 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2%(44명)가 가족의 여가 및 건강관리 비용으로 월 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한다고 응답했다. 월 소득의 5~10%를 쓴다는 응답은 33.3%였다.

푸르덴셜생명 오종윤(吳宗倫) 라이프플래너는 "적정 여가비용을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처분소득의 5%를 넘으면 과도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P 씨는 "매주 어디 갈지 정하는 일이 스트레스이고 교통체증으로 인해 안 떠나느니만 못한 여행이 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아이가 좋아하는 눈치고 또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여가비용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뭔가 '확실하게' 놀지 않으면 주말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효과에 비해 여가비용을 과다 지출하는 요인이 된다.

미혼 직장인 S 씨(26·여)는 주말마다 약 5시간 동안 밤 스키를 타고 새벽에 귀가한다. 리프트 이용권과 자동차 기름값 등 한 번에 9만 원가량 든다. 가족을 볼 시간도 없고 월요일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노는 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명지대 여가문화센터가 주5일제 근무를 하는 직장인 770명을 대상으로 '여가를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요인'을 조사한 결과 29.4%가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등 '여가 콘텐츠 부족'을 꼽았다.

실제로 한국인은 TV 보는 것을 제외하면 여가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편이다.

한국인의 1주일 평균 여가시간은 1981년 19시간15분에서 1999년 24시간6분으로 늘었다. 그러나 TV 보는 시간을 빼면 4시간26분에서 3시간18분으로 줄었다.

휴먼경영연구원 이장주(李長周) 연구위원은 "만들어져 있는 여행상품이나 레저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성 여가'를 제외하면 한국인은 즐겁게 시간 보내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기업 고참 차장인 박모 씨는 "주말에 집에서 TV를 보고 있으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한심한 가장으로 보일까봐 괜히 혼자 동네 뒷산에 오르거나 할 일이 없는데도 회사에 나가곤 한다"고 말했다.

▽진짜 펀 경영은 가족 모두가 재미를 느껴야=미국 클린턴정부 시절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 장관은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돌연 장관직을 그만뒀다. 일에 몰두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가정으로 돌아간 그는 또 다른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자녀와의 대화는 어색하기 일쑤였고, 아내는 종종 자신을 귀찮아하더라는 것.

휴먼경영연구원 이 연구위원은 "가족 구성원 간 공감대가 약한 상태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가족 사이에서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명지대 김 교수는 "목돈 마련을 위해 오랫동안 적금을 붓듯 미리 시간을 조금씩 '투자'해야 화목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운동이든 요리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하나씩 개발해야 한다는 것. 또 그 활동이 가족에게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지표는 펀 경영의 핵심인 '재미'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부모가 서운해 할까봐 마지못해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대학생 자녀, 자신은 재미없게 느끼면서 의무감으로 자녀와 놀아주는 부모는 펀 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