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호(號)가 새해 벽두부터 ‘노 저을 사공’이 없는 형편이 됐다.
천정배(千正培) 전 원내대표가 1일 사퇴한 데 이어 3일 이부영(李富榮) 의장과 중앙상임위원단이 일괄 사퇴했기 때문이다. 천 전 대표는 취임 8개월여 만에, 이 전 의장은 꼭 138일 만에 각각 중도하차했다.
당의 ‘투 톱’이 그만 둔 이유는 일차적으로는 4개 쟁점 법안의 연내 처리에 실패했기 때문. 특히 1일 새벽 4개 법안 중 신문관련법안만 통과된 뒤 당내 강경파 의원들은 험악한 기세로 지도부 퇴진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협상 결렬의 책임을 ‘투 톱’에게만 지우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다.
우선 국가보안법 폐지에 결사반대하는 한나라당의 벽과 합의 처리를 종용하며 직권상정을 거부한 김원기(金元基) 국회의장의 소신을 뛰어넘어 ‘4개 법안 연내 처리’라는 당론을 관철한다는 것은 애당초 쉬운 과제가 아니었다.
더욱이 이념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열린우리당 전체 구성원이 만족하는 결과를 얻어 내는 일은 한 중진 의원의 말대로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난해 말 이후 계속된 여야 협상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가 보인 행태다. 이들은 지도부에 힘을 실어 주기는커녕 지도부가 간신히 어려운 합의를 만들어 와도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천 전 대표도 3일 기자간담회에서 “강경파가 실패라고 주장한 여야 4자 회담을 12월 21일 시작하지 못했더라면 그나마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할 엄두도 못 내고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았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을까.
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지도부의 리더십을 탓하는 강경 자세만이 능사가 아니다. 권한을 위임했으면 지도부를 믿고 따르는 승복의 자세(followership)도 필요하다”고 강경파를 겨냥해 일침을 가했다. 비상대책위로 지도체제가 바뀌어 ‘사공이 많아진’ 만큼 이제 그런 당인(黨人)의 자세가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강경파 의원들이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최영해 정치부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