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를 찍으며 체중이 9kg 줄고, 드라마가 끝난 뒤 다시 10kg이 불었다는 이 PD. 그는 새 미니시리즈의 예상 시청률을 묻자 “20%는 넘어야죠”하며 웃었다. 박영대기자
이재규 PD(35).
그의 이름 석자 앞엔 ‘다모(茶母) 연출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1996년 MBC에 입사해 일일극 ‘보고 또 보고’와 미니시리즈 ‘국희’ ‘아줌마’의 조연출을 거친 이 PD는 2003년 첫 연출작인 ‘다모’로 스타급 연출가 대열에 합류하며 드라마 PD의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드라마 관계자들이 이 PD를 ‘덜 익은 사과’라고 평가하면서도 그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모’에서 보여준 영상세대에 어필하는 연출 감각과 새로운 드라마작법 때문.
‘다모’는 드라마에 열광하는 ‘폐인(廢人)’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문화 현상을 낳았고, 지난해 12월 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TV상’에서 드라마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다모’의 후속 작을 기다려온 ‘다모 폐인’들에게 이 PD가 올해 선보일 드라마는 1960, 70년대를 주름잡던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다룬 ‘훼숀 70s’이다.
그는 ‘다모’를 눈여겨본 제작사 ‘김종학 프로덕션’에 스카우트돼 지난해 8월부터 이 회사의 최연소 PD로 일하고 있다. 5월경 SBS에서 방영되는 24부작 HD 드라마 ‘훼숀 70s’ 준비로 바쁜 이 PD를 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조선 여형사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도 시대극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가요.
“시대적 배경은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뿐입니다. 폭발적인 활력이 넘쳤던 70년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요. 당시 문화를 주도했던 상류층 사회를 보여줄 예정입니다. 디자이너 지춘희 선생이 의상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주인공인 한국의 샤넬 역에는 이요원이 확정됐다던데….
“이요원은 귀티가 나면서도 실제 성격은 터프해요. 품격 있는 사람이 터프하면 재미있을 겁니다.”
―‘다모’ 이후 첫 미니시리즈여서 기대가 큽니다.
“‘다모’의 성공 경험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요. 새로 시작해야 하고, 새 작품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입니다.”
‘다모’는 중국 일본 홍콩 등 세계 10개국으로 수출됐다. 편당 수출 가격이 5만284 달러로 MBC 드라마 중 ‘불새’와 ‘대장금’에 이어 3위이다. 시대극은 해외에서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올해는 일본에서도 방영될 예정.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사실 일본 드라마는 주제 발굴이나 연기 연출 미술 등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15년은 앞서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일본 드라마는 소소한 주제를 섬세하게 다룹니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생사가 걸린 사건이 많고 작은 갈등도 열 배 스무 배 증폭시키지요. 잔잔한 드라마에 식상한 일본인들이 갈등의 폭이 큰 한국 드라마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훼숀 70s’ 외에 준비 중인 작품은 없나요.
“잠수부 형제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다모’처럼 사전 제작을 해야 하는 작품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죠.”
이 PD는 오전 늦게 오피스텔로 출근해 창의적 사고를 촉진한다며 캔 맥주 2, 3개를 마시면서 새벽 2, 3시까지 일한다. 퇴근 후엔 한 시간가량 어항 속 물고기를 돌보다 잠이 든다.
“지금은 심신이 피폐해진 상태예요. 그런데 드라마를 찍기 시작하면 헐크처럼 상상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분출합니다. 고통스럽지만 빨리 드라마를 찍었으면 좋겠어요.”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