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영화사 봄
‘엄청나게 잘 나가다 하루아침에 망가지는 인생을 그리기엔 최고의 배우.’
영화 ‘달콤한 인생’의 김지운 감독은 양극단의 인생이 동거하는 이병헌(사진)의 얼굴을 이렇게 표현했다. 4일 밤, 이 영화의 마지막 촬영이 진행되던 서울 종로구 안국동 주택가에서 이병헌을 만났다. ‘뵨사마’로 불릴 만큼 일본에서도 인기절정인 그에게 물었다. “지금의 이병헌을 만든 비결이 뭐죠?” 그가 답했다. “돌다리를 너무 두드리면서 살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영화처럼 ‘달콤한 인생’이 있었나요.
“내 영화를 개봉하는 날 극장에 몰래 갑니다. 내 감정을 함께 느끼고 때론 훌쩍이는 관객과 있으면서 오르가슴을 느끼죠. 짧지만… 달콤해요.”
―하지만 실패한 영화도 있었죠.
“솔직히 말해 망한 적도 있어요. (웃음) 첫 영화가 실패하니까 주위에서 ‘세 편 이상 안 되는 배우는 충무로에선 절대로 안 쓴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 세 번째 영화도 안 되니까 차마 내 앞에서 그 말을 못 꺼내더라구요. 네 번째 영화까지 안 되니까 날 다 피해요. 다섯 편째(‘내 마음의 풍금’)부터 다르더니, 여섯 편째(‘공동경비구역 JSA’)에 터지니까 ‘홍수환(권투선수)보다 더 대단한 놈’이라고 하더군요.”
―서울 명동에는 이병헌 얼굴을 발바닥에 새긴 양말도 등장했어요. 한류 스타임을 실감해요.
“아, 그 양말. 매니저가 사다 주더군요. 혹시 날 짓밟겠다는 뜻은 아니겠죠?(웃음) 사람인 이상 인기에 신경 안 쓸 수 있나요. 일본에서 멜로를 좋아한다고 하면 ‘멜로를 더해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유혹을 이겨내고 싶어요. 내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팬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사랑해주고 그 소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죠.”
―한국과 일본 팬의 차이가 있나요.
“중화권 팬들은 내가 넋이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지릅니다. 열정적이죠. 일본 팬은 ‘와’ 하다가도 일순간 조용해집니다. 내 숨소리조차 들릴 만큼요. 환호성이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오면 자기 손으로 입을 꾹 틀어막으며 참아요. 옆 사람에게 방해를 주지 않으려고. 한국 팬은 중화권과 일본의 딱 중간이죠.”
일본 팬들은 이병헌의 한국어 홈페이지에도 찾아와 ‘Byung Hun ssi(병헌 씨)’ 하며 영어로 애정을 표시하기도 한다.
―진한 연애도 다시 하면 더 좋겠어요.
“그건 중학교 때부터 바라던 바죠(웃음). 배우가 사랑에 빠지면 연기에서 미세한 느낌이 살아나죠. 사랑을 많이 하거나, 더 큰 사랑을 하거나, 미친 사랑을 하거나 배우에겐 재산입니다. 사랑은 닫혀 있던 자신을 열어주니까요. 물론 연기를 더 잘 하기 위해 연애를 하는 건 아니고…(웃음). 스캔들이 무서워서, 팬들이 달아날까 무서워서 연애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죠.”
촬영장에서 이병헌은 그의 극중 배역인 ‘김 실장’에다 수식어를 붙인 ‘천하무적 김 실장’으로 통했다. 하루 2시간 자며 2주 내내 비 맞는 장면을 촬영하고, 또 땅 구덩이에 생매장 당하는 장면을 숱하게 촬영했음에도 감기몸살 한번 걸리지 않는 그의 ‘악바리 정신’을 빗댄 말이다. 주연배우가 앓아누우면 스태프들도 덩달아 누리는 ‘꿀맛 휴식’을 이병헌에겐 기대조차 하지 못한다는 ‘불만표시’이기도 하다.
바람피우는 보스의 애인을 묵인함으로써 하루아침에 조직 전체와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되는 남자 선우의 급전직하 운명을 담은 액션 느와르 ‘달콤한 인생’은 4월 1일 개봉된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