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 복구를 둘러싸고 주요국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지원을 넘어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복구의 주체를 놓고 이라크전쟁에 이어 다시 마찰을 빚고 있다. ‘동아시아 맹주’ 자리를 노리는 중국과 일본도 경쟁적으로 지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외신들은 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구호 정상회담에서 참가국들이 전폭적인 지원에 합의하겠지만 물밑에서는 주도권 다툼이 치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와중에 독일은 피해국 지원금을 5억 유로(약 6억6800만 달러)로 늘려 일본을 제치고 최대 원조국으로 떠올랐다.
▽미국-유럽, 해묵은 감정 재연=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진 발생 직후 “복구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며 일본 호주 인도 등이 참여하는 협의채널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이라크전 때 미국과 뜻이 같은 국가끼리 연합을 결성한 것에 착안해 남아시아 지진에서도 그와 비슷한 다국간 협의기구 창설을 제의한 것.
미국은 이라크전 이후 고조된 이슬람권의 반미감정을 완화하고 이 지역에 대한 장기주둔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미군 병력을 파견하는 데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은 “지진 피해 복구는 유엔이 주도해야 한다”며 즉각 제동을 걸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엔이 긴급 구호부대를 조직하면 프랑스는 당연히 참가한다”며 유엔 주도론에 힘을 실었다.
독일이 당초 발표보다 25배나 원조액을 늘린 것도 미국을 견제하고 유럽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유럽 국가들은 이번 지진으로 유럽의 인명피해가 컸는데도 미국이 유럽을 제치고 구호대책을 거론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다.
▽중국-일본, 아시아맹주 다툼=5억 달러 지원으로 국제사회의 원조 흐름을 주도한 일본은 700여 명의 자위대 병력을 인도네시아에 파견키로 하는 등 외교적 과실(果實)을 챙기겠다는 태세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아시아에서 진짜 ‘맏형’이 누구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이번 조치가 중국을 의식한 것임을 부인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이면서도 6000만 달러를 내놓은 중국은 ‘남아시아 상황은 원조액 규모보다 지원 속도가 중요하다’며 신속 지원에 주력한다는 입장.
지진 발생 당일인 지난해 12월 26일 구호물자 제공을 결정하고 사흘 뒤 100t 규모의 물자를 실은 전용기를 스리랑카에 보내는 등 ‘빈약한 자금’의 한계를 빠른 지원으로 보완하고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