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공은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큰 성공에는 가족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과 가정에 균형을 찾을 수 있는 한 해를 설계해 보자. 합성된 가족 사진은 조흥은행의 광고 이미지. 그랙픽 이진선기자
《최근 TV에서도 방영된 니컬러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패밀리맨’.
주인공은 잘나가는 투자회사 사장으로 뉴욕 맨해튼의 최고급 펜트하우스와 꿈의 자동차 페라리를 가졌다.
13년 전, 가지 말라는 연인 케이트의 호소를 뒤로하고 떠나와 멋지게 성공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케이트와 두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평범한 가장이 돼 있다.
운명의 신이 그가 13년 전 사랑을 선택했을 경우의 삶을 경험하게 한 것.
주인공은 처음엔 자기 모습에 실망하지만 결국 케이트에 대한 사랑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아무리 성공해도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뻔한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이지만 가슴이 찡해진다.
영화처럼 극단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일은 드물지만 죽도록 일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 일과 가정을 조화시키는 문제는 대부분 가장들의 고민이다.》
○ 결혼의 적, MBA?
얼마 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결혼생활을 망치는 MBA(That marriage-wrecking MBA)’라는 기사가 실렸다.
경영학 석사(MBA) 과정 중인 학생들이 살인적인 경쟁 때문에 가정을 돌보지 못해 이혼율이 50%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MBA에선 ‘블랙 먼데이’라는 말이 농담처럼 전해진다. 9월에 입학해 두 달 동안 가족과 거의 못 만나는 이들은 추수감사절 휴일에 집에 갔다가 다음 월요일에 ‘싱글’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법률이나 의학 등도 힘든 분야인데 왜 하필 MBA? 가장 젊을 때 억대 연봉으로 ‘자본주의의 단맛’을 보게 될 가능성은 MBA가 가장 높다. 그 과정에 막 들어서 한껏 고양돼 있는 데다 대부분 아직 안정감이 없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이 같은 현상은 졸업 후에도 이어진다. 돈과 성공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고 다른 가치들은 소홀히 하는 이런 성향이 일종의 ‘중독’이기 때문이라고 FT는 보도했다.
이는 비단 미국 MBA만의 얘기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법칙, 보상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평범한 회사원은 고액 연봉을 향해서, 고액 연봉자는 더 높은 연봉과 명예를 향해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가정에 신경 쓸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일과 가정을 둘 다 지키는 사람도 많다. 심리학자들은 현실적 요인 외에 자신의 문제도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 일중독 여부는 가족을 보면 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부부클리닉 후’를 찾은 외국계 기업 중역 A 씨 부부. ‘완벽맨’으로 통하는 전형적 일중독자인 그는 최근 몸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에선 뚜렷한 원인도 없이 스트레스성이란다. 부인도 폭발 직전이다. A 씨는 ‘돈’으로 모든 가정사를 해결해 왔다. 아주 가끔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와 수백만 원 대의 선물로 무관심을 보상해 왔다. 그러나 그의 지나친 유능함은 이제 가정도,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B 씨는 회사에 365일 출근한다. 그는 감정의 흔들림이 없는 냉정한 사람. 부인은 우울증이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아이가 없는 그들은 병원에 가 보지도 않는다. 불임일 가능성도, 부인의 우울증도 인정하지 않는 그들은 정서적인 이혼 상태다.
일중독과 ‘열심히 일하는 것’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부부클리닉 후의 수석 컨설턴트인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 씨는 “성공에 대해 만족하지 않으며 한가한 것을 못 참아 항상 바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일중독”이라며 “누가 일중독인지 알려면 그 가족을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직장에선 열심히 하면 분명한 보상이 있지만 가정에서는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으며 시간과 정서적 개입이 필요하다. 일중독자들은 불평하는 가족을 걸림돌처럼 느끼고 직장보다는 가정을 포기한다는 것.
또 이런 사람들은 자기애(自己愛)적 성향이 강해 항상 타인의 갈채와 선망을 원한다. 모두들 그를 부러워하지만 그 자체가 자신에겐 ‘쥐약’이 된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 찾기’
FT에 따르면 미국 카네기멜론대 MBA 학생의 부인들은 워크숍을 열어 심리학자를 초빙해 조언을 들었고 큰 도움을 받았다. 대부분의 대학도 배우자 커뮤니티를 만들어 친구를 사귀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남편이 시카고대 MBA 과정에 있다는 클레어 마이어 씨는 FT에 독자의견을 보냈다. 남편과 저녁 먹을 기회가 거의 없는 그도 다른 부인들과 서로 ‘MBA 과부 클럽’이라며 농담하지만 배우자가 발전하도록 도와 주는 과정에서 부부관계가 더욱 굳건해진다는 내용.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남편의 자기 혁신이 중요하다. 무조건 ‘일보다는 가정을 중시하라’는 강요는 비현실적이다. 일과 가정의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지 부부간의 합의가 필요하며 그 합의는 매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또 더 큰 성공은 가족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돈 버는 방법을 가르치면서도 항상 가정을 강조하는 일본의 머니 컨설턴트 혼다 겐 씨는 “일본에서 연 수입 3억 원 이상의 부자들 중 92%는 이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백만장자에 대해 조사한 ‘백만장자 마인드’라는 책은 백만장자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백만장자가 되는 비결 중의 하나는 ‘배우자의 내·외조’라고 강조한다. 오직 일 때문에 가정을 버리는 사람들은 결코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가정 행복 지키기 수칙▼
○ 남편
―‘일이냐 가정이냐’식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고 일과 가정이 공존할 수 있는 평화로운 조건을 찾아라.
―인생을 길게 보았을 때 ‘일과 휴식’, ‘업무와 취미’가 공존하는 삶의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나의 행복과 소망이 배우자와 가족의 행복, 소망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
―나 때문에 배우자와 자녀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관심을 기울여라.
○ 아내
―배우자를 변화시키려 들면 부부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남편이 수용을 하든 말든 나의 심정을 알리는데 주력한다.
―남편의 역할을 늘 상기하라.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혼자 결정내리지 말고 남편의 의견을 묻고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한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돈’으로 대리만족하지 말라. 아내가 그런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이면 남편은 돈으로 애정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부부가 함께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아라.
―부부가 함께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집 마련, 여행, 자녀 출산, 자녀 교육 문제)를 세우고 서로 의논하라.
―‘가정’이라는 테두리를 체감할 수 있는 활동(친구 가족과 어울리기 등)을 만든다.
―가족의 규칙, 구성원 각자의 ‘소망리스트’를 각자 적어 본다. 행동, 감정, 사고의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작성한다. 이를 매년 업그레이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