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는 새해 독자와 함께 하는 DIY 코너를 진행합니다. 이번 주에는 윤기훈 씨(삼성증권 차장·42)가 딸 서영이를 위해 책꽂이 만들기에 도전했습니다. 28일자에는 ‘양피지 공예’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양피지 공예에 도전하실 분은 위크엔드(weekend@donga.com) 앞으로 참가를 원하는 사연과 연락처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쉽지 않군요. 처음 만져보는 공구가 맘대로 잘 안 움직입니다. 서영이는 옆에서 눈을 반짝이며 아빠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기는 경기 일산 내디내만 목공학교. ‘책꽂이 하나쯤이야’ 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책장이나 침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휴∼.
4시간을 씨름한 끝에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꽂이가 탄생했습니다. 가구점에서 사주면 쉽지만 이번엔 아빠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답니다. 아빠의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게 만들어진 책꽂이가 서영이에게 오래도록 자랑스러움으로 남길 바랄 뿐입니다.
○ 설계
일단 인터넷에서 비슷한 모양의 모델을 고르고 미리 치수를 재 왔다. 뭘 만들지 얘기를 듣더니 내디내만의 오진경 사장이 연필로 쓱쓱 3단 책꽂이 모양을 그려 보인다. 서영이와 상의를 한 끝에 연필꽂이와 작은 사물함을 추가하기로 했다.
“예쁘게 될까요?” (윤 씨)
“예쁘게 만드셔야죠.” (오 사장)
“…….” (윤 씨)
○ 연습
가구 만들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도구는 전동 드릴. 나사못이 들어갈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나사못을 박아 넣는 데 사용한다. 30분쯤 연습하면 웬만큼 사용한다. 윤 씨도 자투리 나무 두 쪽을 가져와 연습을 시작했다. 전동 드릴은 회전 속도가 1분에 4000번 정도인데 나사못은 수십 번 돌면 완전히 들어간다. 요철을 정확히 맞춘 후 힘을 주고 누르면서 스위치는 아주 살짝 눌러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계속해서 드릴이 헛돌자 윤 씨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 재단
나무판에 연필로 선을 그은 후 그에 맞춰 자르는 작업. 직선으로 자르는 부분은 커다란 전동 톱을 쓴다. 위험하기 때문에 미리 근처 공방에 맡기고 집에서는 조립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DIY 가구업체에 설계도를 보내면 정확하게 잘라서 보내주기도 한다. 곡면은 지그소(Zig-saw)라는 톱을 이용하는데 이것 역시 연습이 필요하다.
○ 조립
가장 밑에서부터 위로 차례차례 조립한다. 판을 직각이 되게 세우고 드릴로 구멍을 뚫은 후 나사못을 박는 과정이다. 연습을 꽤 했지만 실전에 들어가니까 쉽지 않다. 특히 드릴을 옆으로 댈 때는 더 어렵다. 윤 씨도 ‘엇’ 하는 순간 못이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애초에 구멍을 잘못 뚫었든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힘을 세게 줬기 때문이다.
○ 마무리
조립이 끝나면 사포로 모서리를 다듬고 페인트를 칠한다. 전체는 옅은 노랑, 사물함은 분홍, 연필꽂이는 파란 색으로 칠했다. 옆에서 잡고 있던 서영이도 사물함을 맡았다. 꽃잎과 과일을 이용한 천연 페인트라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고 한다.
드디어 완성됐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숙달된 사람은 한 시간이면 끝난다는 작업이 4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윤 씨의 얼굴엔 뿌듯함이, 작업을 지켜본 서영이의 얼굴엔 아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피어났다.
(취재 협조=DIY가구업체 내디내만·www.my-diy.co.kr·1588-7893)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너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단다”▼
서영이에게
안녕? 우리 큰딸 서영이.
엄마만큼이나 키가 큰 서영이를 보면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단다. 벌써 열두살이라니.
병원 신생아실에서 처음 너의 얼굴과 마주쳤을 때의 짜릿한 느낌, 네 살 때였나, 너의 뽀얗고 단아한 사진을 담아둔 머그컵, 유치원 때 용산가족공원에서 찍은 너의 활짝 웃는 얼굴, 네가 그토록 원했던 동생 재영을 얻은 다음 집안에서 함께 뒹굴던 모습….
귀엽고 발랄한 너의 모습들이 아직도 아빠 기억 속에 생생한데 작년부터는 혼자서 책 읽고 컴퓨터하고 TV보고 하더구나. 또 엄마 대신 술 마시지 마라, 담배 피우지 마라, 일찍 들어와라며 아빠를 챙겨줄 때면 이제 어리광만 부리는 어린애가 아니라 우리 가정의 어엿한 한 축이 된 듯해 기특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단다.
그러면서도 “새해 소원 중의 하나가 남자 친구 만드는 것”이라는 너의 말을 듣고는 기뻐해야 할지, 서글퍼해야 할지 기분이 묘하더구나. 옛날 네 고모의 결혼식 날, 집으로 돌아와 홀로 벽을 마주보고 말없이 눈물지으시던 할아버지처럼. 아빠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며칠 전 집에서 너와 단둘이 퍼즐을 맞출 때 서로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아빠는 속으로 무척 즐겁고 기뻤단다. 아빠는 굳이 말이 없더라도 서로의 존재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좋다.
아빠 엄마는 네가 넓고 거친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많은 경험과 교육의 기회를 마련하고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한단다. 그렇지만 네가 자라서 독립한 후엔 멀리서 조용히 바라보는 후원자로서 만족하고 싶다. 네 할머니가 아빠를 지켜보시듯이 말이야.
서영이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계속 커주면 아빠는 더 바랄 게 없겠다.
새해를 맞으며 아빠가 네게 바라는 소원을 이름 3행시로 풀어볼까?
윤! 윤활유처럼 사람과 사람을 부드럽게 이어주는,
서! 서설(瑞雪)처럼 세상을 밝게 비추어 기쁨주는,
영!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사랑을 나누어주는 서영이가 되었으면 좋겠구나.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