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개를 달아줄 수 없다/김지우 지음/232쪽·9000원·창비
2000년 제3회 창비 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신예 작가 김지우(42)의 첫 소설집이다. 그의 시선에 잡힌 군상들은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내몰린 이 시대 밑바닥 인생들이다. 그러나 중산층이 무너지고 사회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요즘, 책에 등장한 인물들은 밑바닥이 아닌, 일상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이 시대 한국인들의 아슬아슬한 초상들이다.
‘디데이 전날’은 외환위기 때문에 거리로 내몰려 이른바 자해 공갈단(보험사기단)에 뛰어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그 사흘의 남자’는 이혼한 전 남편 카드 빚을 갚기 위해 노래방으로 출근하는 여자 이야기다. ‘눈길’은 징역살이를 하는 동안 아내가 달아나 버려 홀어머니와 어린 아들을 부양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며, ‘물고기들의 집’은 가장이 떠나 버리고 낚시꾼들을 뒷바라지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업둥이 아들과 며느리, 시어머니로 구성된 비혈연 가정의 이야기다.
이들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신랄하다. 속도감 있는 문체를 구성하는 맛깔스럽고 생동감 넘치는 언어들은 일상의 경계 밖으로 밀려날 위기에 처한 개인들의 고통과 밀착해 있다. 게다가 후미지고 외진 곳을 외면하지 않고 파고 든 작가의 취재력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산문 정신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김지우 소설의 매력은 이를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그는 단순히 이들의 삶의 ‘폭로’에 머물지 않고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그 사흘의 남자’에 등장하는 남녀는 자신들의 삶조차 추스르지 못하는 극단의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연민과 동정을 보내며, ‘눈길’의 남자 주인공은 경제적 결핍 때문에 범죄의 유혹을 받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물고기들의 집’ 식구들은 피가 섞이지도 않았지만 아슬아슬한 위기상황 속에서 믿음을 키운다.
작가의 이런 따스한 시선은 일상의 부조리라는 어두운 측면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경쾌함이 묻어나는 서사를 가능케 하는 힘으로 확장된다. 반미(反美)의식을 가진 남편까지 속이고 원정출산을 떠난 산모의 복잡한 심경을 그린 ‘해피 버스데이 투 유’나 사랑하던 사람을 배신하는 주인공의 실존적 고뇌와 애환을 그린 ‘댄싱 퀸’은 비록 경제적 궁핍에서 자유로울지라도 실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들의 또 다른 초상이 담겨 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