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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선진 한국’ 말과 현실 사이

입력 | 2005-01-10 18:11:00


노무현 대통령이 ‘선진국 진입’을 새해 화두로 꺼내면서 ‘선진국에 맞는 의식과 문화, 시스템의 정비’를 강조한 그 순간에 교육부총리 추천 검증 시스템은 헛돌고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인가. 정부가 실수 덜 하는 게 선진국이지.”

그렇다고 ‘이기준 악수(惡手)’가 나라의 재앙이나 되는 듯이 떠들 일도 아니라고 본다. 솔직히, 옥석이 가려지지 않은 정부 인사(人事)가 어디 이뿐이었나. 자질과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코드맨’들이 줄줄이 벼락출세해 국정 선진화에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는가.

물론 교육 수장을 고르면서 도덕성 문제를 가볍게 본 것은 실수 이상이다. 정권 핵심부의 ‘판단력 무능’이 드러났다. 하지만 ‘대학의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 추진, 이공계 인적자원 개발 등의 적임자’를 찾으려 한 것은 타당했다.

‘이기준 쇼크’ 때문에 실용 지향의 인사 포석을 단념한다면 국가 선진화 의욕마저도 ‘낡은 이념과 얼치기 개혁론’에 매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지난 2년간 국민을 피곤하게 해 온 노사모형, 전대협형, 전교조형 정치운동을 극복하지 못하고는 ‘선진 한국’을 꿈꾸기 어렵다.

▼“문턱에 와 있다”는 착각▼

정부 고위직 및 정당 대표들과 가진 신년 인사회에서 대통령은 “선진국이 되려면 민주주의가 선진화돼야 한다”고 했다. 말만 비단 같으면 뭘 하나.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 기본 중의 기본인 언론자유를 비트는 신문법을 버젓이 만드는 정권이다. 지난날의 권위주의 정권들도 포기하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비판 응징 악법’을 개혁법이라고 우기는 정권이 선진국 비전을 말하는 것은 코미디다.

대통령은 또 “우리 국회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했다. 아무리 새해 덕담이라도 그렇지, 얼마나 많은 국민이 수긍할까. 정부 여당의 공식기구인 당정협의회에서 합의된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 적용 유예’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 배치된 여당 의원 4명이 뒤집어 버렸다. 국회와 여당의 이처럼 희한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태까지도 선진국 문턱의 징후로 봐 줘야 하나.

정부와 여당은 말로는 투자 활성화를 외치면서도 재계의 간곡한 건의를 무시한 채 공정거래법을 원안대로 개정했다. 이 또한 선진국형 입법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 재벌에 대한 행정 권력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기업정책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적용한 흔적이 뚜렷하다. 부채비율을 100% 밑으로 떨어뜨린 기업의 출자총액은 제한하지 않는다는 시행령 조항을 삭제하려는 것도 특정 기업을 계속 규제하겠다는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를 두고 시장정책의 선진화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선진국 진입은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다. 바로 선진국을 달성한다는 그런 야심 찬 자세로 국정을 운영해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수많은 다중 규제를 입으로만 푼다, 푼다 하면서 여전히 움켜쥐기에 바쁜 정부를 보고 있자니 ‘바로 선진국’은 아무래도 헛꿈인 것 같다.

규제의 틀을 그대로 두고서 건건이 심사해서 수를 줄이는 방식은 이미 김대중 정부에서 실패로 끝난 바 있다. 규제의 틀을 자율의 틀로 바꾸는 획기적인 결단 없이는 선진국형 시장경제를 꽃피우기 어렵다. 또 법에도 없는 관행적 규제를 청소하는 데서부터 공직사회 개혁을 시작하지 않고는 정부 선진화도 아득하다.

▼정치권·정부의 후진성 사라질까▼

요즈음 항간에는 대통령이 달라졌다느니, 달라지지 않았다느니, 달라진 척한다느니 해석이 구구하다. 그런 중에서도 대통령이 달라졌다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2년간 나라가 너무 찢기고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져 대통령의 변화에서 지푸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선진국 진입이건, 경제 최우선이건, 분열 아닌 통합이건 집권 측의 구체적 선택과 결행이 성패를 가를 것이다. 언행(言行)의 ‘동반 성장’을 기대한다. 말뿐이라면 4월 재·보선용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1, 2, 3월에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