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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양보경]다시 찾은 백두대간 산맥지도

입력 | 2005-01-10 18:17:00


학문과 이론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새로운 세계관, 사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면 대상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시각, 방법, 절차 등도 변한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위성 영상을 이용한 한반도 산맥체계 재정립 연구’는 수치표고 모델(DEM), 인공위성 영상자료, 지리정보체계(GIS) 등 새로운 도구와 방법이 학문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 준 좋은 예다.

물론 이러한 기술의 활용에는 사고의 전환이 먼저 있었다. 교과서에 제시된 우리나라 산맥체계에 대해서는 1980년대부터 재야에서 꾸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전통적 산맥체계의 중심이었던 ‘백두대간’의 개념이 생태, 환경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는 공감대에 따라 ‘백두대간보호법’이 만들어질 정도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

국토연구원의 연구 결과는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의 이론을 근간으로 지난 100년 동안 사용해 온 현행 교과서의 산맥체계와 다른 체계를 제기하였다. 새로운 산맥의 내용은 오히려 전통 고지도에 보이는 산맥체계와 유사하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조상의 지혜에 감탄하며, 현행 산맥체계의 이름을 하루빨리 바꾸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산맥 이름을 바꾸기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우선, 산맥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고토는 망아지를 끌고 14개월을 조사해 현 산맥체계의 바탕을 만들었다. 짧은 기간이었으므로 본인이 답사한 지역의 지질구조를 바탕으로 정리한 산맥체계는 정확하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부정확했던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번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도 몇 명의 인력이 1년 동안 작업을 한 것이다. 첨단 자료와 기법을 이용했으나 현지조사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지형 연구는 현장 답사가 생명이다. 산맥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파악하는 것은 지형도나 영상자료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므로 정밀하고 정확한 한반도 산맥체계를 정립하려면 남북한 지리학계 등과의 광범위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

우리의 전통 산맥체계에 관한 연구도 더 정밀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우리 전통 산맥체계 연구에서 교과서가 되는 책이 ‘산경표(山經表)’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지도에 표현된 내용과 ‘산경표’의 내용도 완전히 같지 않다. 현행 산맥의 이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기준이 될 수 있는 전통 산맥체계의 이름도 분명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산맥체계에 대한 이름의 정립에 학계는 물론, 일반의 여론을 풍부하게 수렴하는 기간과 절차를 가져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그에 관한 학생 교사 등 교육현장의 여론 수렴도 필요하다.

아울러 이름 바꾸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맥이 지니는 의미를 되새겨 국토의 뼈와도 같은 산지를 황폐화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학계 산업계 지방자치단체 일반인의 환경인식과 국토사랑을 진정으로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산경표’는 1800년경, 즉 19세기 초에 쓰였으며 고토의 ‘조선산악론’은 20세기 초에 발표됐다. 다시 100년 뒤 국토연구원이 새로운 한반도 산맥체계를 발표했다. 이제 21세기의 산맥체계를 제대로 만드는 일에 모두의 지혜를 모을 때이다.

양보경 성신여대 교수·지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