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2대 수반으로 당선됐다.
40여 년간 팔레스타인을 1인 통치해 온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의 시대가 끝나고 ‘아바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바스 당선자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팔레스타인 최초의 지도자란 명예도 안게 됐다.
‘민주적 선거’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의 첫 번째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아바스 당선자는 이날 “이번 승리를 고 아라파트 초대 수반과 모든 팔레스타인 순교자들에게 바치며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압도적 1위 차지=9일 오후 9시(한국시간 10일 오전 4시) 선거 종료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 아바스 후보는 66.3%의 지지를 얻어 19.7%를 획득한 무스타파 바르구티 후보에게 압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5명 후보는 4% 미만. 다른 출구조사도 비슷했다.
이번 선거에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 유권자를 포함해 총 180만 명 가운데 65%가 참여했으며 공식 개표결과는 10일 오전 발표될 예정이다.
▽해결의 열쇠는 통합=아바스 당선자는 이날 “우리 앞에는 나라를 세우고, 안보를 확립하고, 나은 삶을 보장하고, 수감자들에게는 자유를 주고, 독립국 건설을 달성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이었다.
아바스 당선자는 내부적으로 정치적 안정과 대외적으로 국제사회 지지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하마스를 비롯한 무장단체들을 껴안아 통합을 이뤄야 한다. 아바스 당선자는 숨진 아라파트 전 수반이 지녔던 것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다. 그만큼 무장단체들에게 끌려 다닐 가능성이 있다. 그걸 경우 자칫 권력의 공백이 생겨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 대외적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협상을 벌여 △독립국 출범 △난민 귀환 △동예루살렘 문제 △점령지 회복 등 민족적 과제를 풀어야 하는데 이스라엘도 협상의 조건으로 무장단체에 대한 통제와 무장해제를 내걸고 있다.
하지만 무장단체들의 대(對)이스라엘 강경투쟁을 막을 뾰족한 묘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중동 전문가들은 “새로 출범하는 아바스 정부에 아라파트 전 수반의 짐을 모두 떠넘길 경우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정권의 단명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민생고 해결이 우선=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민생고도 심각하다. 계속된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요르단 강과 서안지구 370만 인구 가운데 30%가 실업 상태다. 50%는 하루 2달러 미만의 수입으로 살고 있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인들의 배고픔과 보건, 교육, 주택 문제 등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팔레스타인 새 수반 아바스는 누구인가▼
“총을 들어 본 적도 없고 전투에 참여한 적도 없지만 한번 협상에 임하면 끝을 봐야 할 정도로 저돌적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2대 수반에 당선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에 대한 평가다.
모스크바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학구파 정치인 아바스 의장은 1935년 팔레스타인의 사페드에서 태어났다. 1948년 이스라엘이 들어서자 시리아로 건너가 다마스쿠스대를 졸업한 아바스 의장은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과 함께 PLO를 창설한 뒤 40년 동안 ‘아라파트 전 수반의 2인자’로 살아 왔다.
하지만 그는 아라파트 전 수반 사망 직후 발 빠른 움직임과 탁월한 협상력을 발휘하면서 PLO 최대 정치조직인 파타운동의 후보로 지명돼 권토중래하는 데 성공했다.
아바스 의장은 아라파트 전 수반과 달리 이스라엘의 존재를 공식 인정하고 “무장투쟁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평화가 유일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오슬로 평화협상에 참여했으며 1999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도 여러 차례 협상을 벌였다.
이스라엘도 그를 최상의 대화상대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