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여 년에 걸친 소매금융 및 무역금융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시아시장 공략에 노력해 온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10일 제일은행 인수를 발표하자 그 배경과 앞으로의 영업 전략에 대해 금융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격 경영으로 소매금융 영업 박차=SCB는 차주(借主)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능력에서 남다른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
SCB 서울지점 오경림(吳京林) 이사는 11일 “개인 신용대출을 시작한 뒤 9개월간 석 달 이상 연체자가 한 명도 없었을 정도”라며 “앞으로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소매금융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신용카드, 모기지론, 개인자산관리 등도 강화해 현재 6%가량인 제일은행의 소매시장 점유율을 8∼10% 수준으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제일은행 노조는 ‘젊은이들을 대거 충원하겠다’는 SCB 카이 나고왈라 아시아지역 총괄대표의 말에 대해 “은행도 살리고 직원도 살리자는 데 ‘코드’가 맞는 것 같다”며 상당한 기대를 표시했다.
▽제일은행으로 한국시장을 공략=‘아시아 아프리카의 선도은행’을 표방하는 SCB에 부실은행의 꼬리표를 뗀 제일은행은 군침 도는 먹잇감. SCB의 마이크 드노마 소매금융 총괄이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제일은행은 임직원들이 ‘영웅적 정신’을 발휘해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경쟁자에 비해 주당 3000원 이상 더 높은 값에 인수를 결정지은 것은 한국시장 영업확장이 그만큼 다급했다는 증거라고 은행권은 풀이한다.
SCB 경영진이 지난해 초 주주들에게 ‘중국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작년 말 중국 톈진의 신생은행인 보하이은행의 지분 19.99%를 인수한 것을 빼면 번번이 벽에 가로막혀 ‘새로운 성장엔진’이 절실했다는 것.
▽4월말 최종 인수를 끝낸다=SCB의 제일은행 인수는 대주주인 뉴브리지캐피탈과의 본 계약 체결, 한국 정부의 매각조건 검토, 금융감독위원회의 대주주 자격 심사 등을 거쳐 4월 말 최종 완료될 전망.
재정경제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인수가격과 계약조건 등을 검토하고 금감위는 SCB가 감독당국에 적발된 적이 없는지 등을 살펴 국내 은행 지분의 10% 이상을 소유할 자격이 있는지를 심사한다.
금감위 심사를 통과하고 대금 지급이 끝나면 SCB는 제일은행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활동무대는 아시아=SCB는 1969년 스탠다드은행(Standard Bank of British South Africa)과 차타드은행(Chartered Bank of India, Australia and China)이 합쳐 탄생했다.
두 은행의 이름에서 보듯 애초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역점을 뒀다. 2003년 매출액 47억5300만 달러 중 미국 영국 등지의 매출은 5억2900만 달러(11.1%)에 불과하며 홍콩 싱가포르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대부분이 몰려 있다.
1968년 한국에 입성한 SCB는 줄곧 기업금융만 해 왔으나 2003년 9월 전문직과 직장인들을 상대로 신용대출을 시작했고 지난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프라이빗뱅킹(PB) 센터를 두고 소매금융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