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갈채를 보냈고, 부인들은 흐느껴 울었으며 아무도 이것이 마지막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불이 꺼졌지만 열광한 청중은 한 사람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우리가 있어 그 신성한 홀이 살아남기나 할 것처럼, 반 시간이고 한 시간이고 계속 우리는 머물러 있었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가 회고록 ‘어제의 세계’에 기록한 19세기 말 빈의 한 풍경이다. 그가 묘사한 ‘홀’은 객석 수가 500석에 불과한 실내악 연주회장 뵈젠도르퍼 홀이었다.
과거 승마학교였던 장소에 음향판을 붙여 건물 자체는 매우 ‘비예술적’이었다고 작가는 회고한다. 그러나 쇼팽, 브람스, 리스트가 이 무대에 섰고 최고의 실내악단들이 연주를 가졌다. 상가나 관청을 짓기 위해 이 유서 깊은 건물을 헐어버린다는 것을 빈의 음악애호가들은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빈이 19세기에 세계의 음악 수도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밀도 여기에 있었다. 시민들은 공연장을 넘치게 채웠고, 예술가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쏟았다. “총리가 빈의 거리를 지나가도 아무도 뒤 돌아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극장의 여가수에 대해서는 어떤 여자 점원이나 마부라도 곧 알아보았다. 어린이들도 그들의 초상화를 수집했다.” 역시 츠바이크의 회고다.
서울시가 2007년까지 오페라하우스를 세운다고 한다. 기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염려가 앞서는 까닭은,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서울이 이미 있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전용극장 하나도 청중으로 채우기 힘든 현실 때문이다. 공연장들이 청중으로 넘쳐나고, 공연기획자들도 “소화할 공연은 많은데 공간이 없다”며 비명을 지른다면 “서울시의 다른 산적한 문제에 비해 오페라극장이 그렇게도 중요하냐”는 뒷공론이 나올 이유가 없다.
유럽 각국의 수도를 이야기할 것도 없다. 신국립극장, 산토리홀, 분카무라홀 등 이웃 일본 도쿄의 수많은 클래식 공연장에는 언제나 청중이 차고 넘친다.
새 공연장 건립에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으면서도 그 예산의 몇 분의 1이라도 할애해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예술 감상교육에 투자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들에 대한 부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