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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이야기]盧대통령의 ‘읍참마속’

입력 | 2005-01-11 18:10:00


“공보관 출신이라 대응을 잘할 줄 알았는데….”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인사 파문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해 9일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의 오찬 자리. 노 대통령은 배석한 박정규(朴正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박 수석이 파문의 와중에 기자들에게 “이 전 부총리 아들의 부동산 문제는 몰랐다” “사흘 동안 30명의 후보자를 검증했다”고 솔직하게 밝힌 것이 빌미가 돼 파문이 더 커졌던 것을 두고 한 얘기였다. 과거 검찰 재직 때 2년여간 대검찰청 공보관을 지낸 적이 있어서 언론의 생리를 잘 알면서 뭐 하러 그런 얘기를 해 비판의 도마에 올랐느냐는 안타까움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박 수석은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에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결국 노 대통령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박 수석을 퇴진시키기로 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내보내게 된 데 대해 상당히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수석은 젊은 시절에 노 대통령과 경남 김해의 한 암자에서 고시공부를 함께하면서 호형호제(呼兄呼弟)했던 사이. 눈빛만 봐도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2월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을 때 박 수석은 사석에서 “보고를 할 때 ‘대통령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형님’ 소리가 튀어나올까 봐 걱정”이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3월 노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했을 때에 박 수석은 어느 누구보다도 가슴을 졸였다. 탄핵 기간 중 매일 오후 10시까지 사무실에서 비상대기하며 즐기던 폭탄주도 끊는 등 스스로 금주령(禁酒令)을 내렸다. 친지들에게도 “국상(國喪) 중에 골프는 치지 않는 게 좋겠다”며 골프 자제를 권고했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과 박 수석의 성향은 많이 다르다. 박 수석은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을 꼽을 정도로 보수적이다. 지난해 초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직후 노 대통령이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는지 조목조목 계산해보라고 지시했을 때에도 박 수석은 “대통령이 그런 걸 따지는 게 아닌데…”라며 속을 끓였다는 후문이다.

다시 변호사 사무실로 돌아갈 계획인 그는 “공직에 대한 세상의 기준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