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조기 종영되는 MBC ‘영웅시대’에서 박대철로 나오는 유동근. 그는 “조기 종영에 대한 외압설과 관련해 MBC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연기자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시청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돼 죄인이 된 것 같다.”
MBC 드라마 ‘영웅시대’(월·화 밤 9:55)에서 박대철(이명박 서울시장)로 나오는 유동근(50)은 방송사의 이 드라마 조기 종영 방침에 대해 단호한 어조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MBC는 최근 100부작 예정이던 ‘영웅시대’를 3월1일 70회로 중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MBC가 밝힌 이유 중 하나는 낮은 시청률. 그러나 ‘영웅시대’는 이달 초부터 줄곧 17%를 웃도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 시청률은 MBC 드라마 중에선 ‘왕꽃 선녀님’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11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유동근은 드라마가 정치적으로 재단되는 바람에 중도 하차하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방송사에 ‘박대철만 빼고 계속 방영하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던데.
“2일 MBC 박종 제작본부장이 녹화 전 출연자들에게 ‘조기종영’을 통보했다. 그때 나도 드라마에서 이명박 시장이 부각돼 정치권에서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박대철 역이 문제라면 나만 빠지면 되는 것 아니냐. 박대철 없어도 100회를 채울 수 있다. 일방적인 조기 종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기 종영의 이유로 시청률이나 작품성을 들먹이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박대철만 빼고 예정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박대철을 빼면 드라마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텐데.
“박대철, 즉 이명박 시장이 대권에 뜻이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논란은 정치권 일부에서 드라마가 편향적이라고 보기 때문 아니냐. 그러나 올해는 대선이나 중요한 선거가 있는 해가 아니다. 정치적 해석 때문에 도중하차 하는 게 아쉬워 그런 말을 했다.”
―박대철이 부각돼 이 시장의 이미지를 확산시켰다는 평이 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대권에 뜻이 있는 다른 주자들이 서운하거나 불쾌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이 있다면, 그래서 방송사가 고충을 겪는다면 작가나 연출자와 논의해서 얼마든지 풀 수 있다.”
―외압이 있었다면 방송사가 막아야 하는가.
“그렇다. MBC가 ‘영웅시대’를 놓고 좌충우돌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외압을 받아본 적 있나.
“나는 없다. 이환경 작가가 ‘정치권에서 여러 차례 경고 전화를 받았다’고 말한 신문기사를 봤는데 사실일 것이다. 이 작가와는 ‘용의 눈물’ 등 여러 작품을 해서 잘 안다. 이 작가는 예전에 중동에서 현대건설 노무자로 일한 적이 있다. 당시 사장이 이 시장이었다. 그 때 이 작가는 식사 때 질 낮은 고기를 줬다고 항의하다가 해고됐다고 한다. 그런 악연이 있는 작가가 이 시장을 좋게 써 줄 이유가 있겠나. 드라마에 현실을 갖다 붙이면 곤란하다.”
―박대철 역을 위해 이명박 시장을 만나봤나.
“직접 만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예민하게 보는 눈들이 많아 만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박대철은 어떤 캐릭터인가.
“가진 게 없던 이가 성공했다는 것이다. 박대철은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힘들어하는 서민, 샐러리맨, 시장상인들이 ‘근성을 갖고 열심히 하면 해뜰 날이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캐릭터다.”
―2월 중순까진 계속 촬영해야 할 텐데.
“녹화하면서 배우들끼리 ‘언제 끝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하니 힘이 나겠나. 박 본부장이 시청률이 급상승하면 조기 종영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지만 그건 말도 안 된다. 조기 종영을 번복한다고 해도 더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유동근은 당분간 쉬겠다고 했다. 연기 인생에서 조기 종영은 처음 겪는 일이어서 충격도 적지 않은 듯했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이 작가와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