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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생태지도]야생화 사계

입력 | 2005-01-13 15:57:00


《한반도의 산과 들, 강과 바다는 이름 모를 꽃과 철새, 나비, 물고기 등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자연은 알면 알수록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집니다. 위크엔드는 주5일 근무시대에 ‘배움이 있는 가족여행’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연중기획 ‘이달의 생태 지도(知圖)’를 매달 1회 연재합니다. 위치를 안내하는 단순한 지도(地圖)가 아니라 한반도를 터전으로 꽃피우고 있는 다양한 생명 분포를 전해주는 지식지도입니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 쏙 뽑아들고 가도 좋고, 자녀의 책상 앞에 붙여놓고 생태계의 경이로움을 일깨워 줘도 좋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은 한국정보공학연구소에서 맡았습니다.》

엄동설한에도 꽃은 핀다. 봄은 아직 기척도 안 보이는데 끄떡없이 피어나는 그 꿋꿋한 생명력. 왜 굳이 그 어려운 때를 골라 피는지, 자연의 섭리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하다. 야생화를 찾아나서는 여행. 그 여행은 이런 자연의 섭리를 따라가는 여행이다.


겨울 꽃의 백미는 동백이다. 진녹색 잎에 파묻힌 붉은 꽃, 그 안의 노란 꽃술. 화려한 삼원색의 대비가 아찔하다. 한겨울 여기에 눈이라도 쌓이면 그 처연한 아름다움에 소름이 돋는다. 시인은 눈밭에 떨어진 동백꽃을 보고 붉은 피 한 모금을 떠올린다.

동백은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핀다. 꽃이 지는 모습이 이야깃거리다. 동백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 한창 때 모습 그대로 모가지만 똑 부러져 떨어진다. 시들지 않고 떨어진 꽃은 아직 살아있는 듯하다. 동백의 청춘은 죽음과 함께 있고 그 죽음은 생명과 함께 있다.

겨울은 벌과 나비가 나다니기엔 벅찬 계절이다. 그래서 동백은 조매화(鳥媒花)다. 동박새가 사랑의 전령사가 돼 꽃가루를 이 꽃 저 꽃으로 옮겨준다. 곤충이 아닌 새를 유인해야 하기 때문에 동백꽃의 꿀주머니에는 꿀이 많이 들어 있다.

동백 답사 여행의 목적지는 바다다. 동백은 제주도 전 지역, 전남북 해안과 섬, 경남 해안과 섬, 경북의 울릉도 해안에 있다. 거제도 학동, 전남 강진 백련사, 전북 고창 선운사, 충남 서천 마량리의 동백정, 경기 옹진 대청도의 동백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겨울에도 남쪽에선 꽃이 피지만 중부 지방에서 꽃을 보려면 4월은 돼야 한다.

해남이나 완도에서 동백나무를 만나면 그 위세에 가슴이 답답해질지 모르겠다. 수령이 몇백 년씩 돼 줄기 둘레가 1m가 넘는 거목이 즐비하다. 내가 산의 주인이라고 외치는 듯 온 산을 동백이 뒤덮고 있다.

동백 답사 여행이 시작이다. 올 한 해 철마다 야생화를 만나러 가 보자. 미리 이름을 알고 가면 더욱 좋겠지만 모른들 어떠랴. 그저 뜻밖의 만남에 가슴 한번 떨리면 좋은 게지.

▼흰동백 수선화 유채꽃… 거문-제주도 겨울야생화 보고▼

겨울에 야생화를 만나려면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추운 겨울 동안 남부지방에서는 동백과 수선화, 산쪽풀, 한란, 장딸기, 서향 등이 꽃을 피워 2, 3월까지 이어진다. 중부지방의 야생화 시즌은 3월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대표적인 겨울 꽃인 동백.

여수 돌산도의 동백나무는 그중에서도 유명하다. 마을에 수령 500여 년 된 동백나무가 있는데 높이가 20m나 되고 나뭇가지가 정자나무처럼 울창하며 많은 꽃이 핀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에서 나무에 제를 지내는데 외지 사람들은 못 보게 한다고 한다.

붉은 꽃이 피는 동백은 남해안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흰동백은 무척 드물다. 거문도와 홍도에 각각 한 그루씩 있는데 지금은 거문도의 흰동백만 꽃을 피운다. 홍도의 흰동백은 바람에 가지가 부러져 꽃이 안 핀다.

한국야생화연구소 김태정 소장은 “순수 우리 토종 식물인 흰동백의 싹을 틔워 많이 퍼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동백은 자라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개발이라는 이유로 잘려나가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거문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에 있다. 겨울 야생화 답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여수에서 뱃길로 두 시간쯤 가야 한다. 이곳은 남해 어업의 중심지로 1885년 영국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이 2년간 무단 점거하기도 했다. 1905년에는 국내 최초의 등대가 들어섰다.

지금도 영국군 묘지가 남아 있는데 무덤과 꽃이 어울려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수선화와 유채꽃이 무덤으로 가는 길섶에 피어 있다. 초록 잎과 하얗고 노랗게 피어난 꽃잎이 하얀 등대를 배경으로 피어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수선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이다. 여섯 장의 꽃잎을 달고 있으며 가운데 금으로 만든 술잔 모양의 샛노란 꽃잎이 또 하나 올라와 있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라는 미소년이 요정 에코의 사랑을 외면하고 호수에 비친 자기 얼굴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자기 얼굴을 그리다 물에 빠져 죽은 후 그 호수 옆에서 핀 꽃이 바로 수선화. 그만큼 자태가 아름답다.

제주도 역시 겨울 야생화의 보고(寶庫)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따뜻한 남국 제주도는 수선화의 고장”이라고 소개했다. 정월 그믐에서 3월에 산과 들 방방곡곡 손바닥만 한 땅에도 수선화가 피어나 마치 흰 구름이 퍼진 것 같다고 적었다.

성산 일출봉 주변의 유채꽃밭도 유명하다. 보통 유채꽃은 봄에 피지만 개량종으로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다.

한란 역시 제주도 한라산이 원산지다. 서귀포시 돈내코 부근 한란 자생지는 200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추울 때 꽃이 핀다고 해서 한란(寒蘭)이다. 보랏빛이 도는 녹색의 꽃이 12월과 1월에 핀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야생화를 볼 수 있는 수목원▼

○ 꽃무지풀무지(경기 가평)

2003년 문을 열었다. ‘무지’는 ‘무더기’를 뜻하는 순우리말. 평범한 직장인이던 김광수 원장이 6년간 준비한 끝에 국내에 자생하는 순수 들꽃 600여 종을 심고 일반에 공개했다. 야생화를 체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한 게 특징. 입구에 마련된 온실에는 꽃과 사진과 설명이 함께 있다. 산자락을 따라 1만3000여 평의 야외전시장이 있다.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청평검문소에서 좌회전한 후 12km를 더 간다. 입장료는 어른 4000원, 어린이 3000원. 031-585-4875

○ 아침고요원예수목원(경기 가평)

영화 ‘편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 10만 평 규모로 1996년 5월 문을 열었다. 삼육대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의 소유로 축령산의 산세와 계곡을 살려 공간을 배치했다. 2000여 종의 야생 식물로 꾸며진 야생화정원이 있고 계절별로 난 전시회, 철쭉제, 야생화전, 아이리스 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된다. 어른 6000원, 중고교생 5000원, 어린이 4000원. 031-584-6702

○ 한국자생식물원(강원 평창)

오대산 국립공원 비안골에 있다. 드라마 ‘여름향기’의 촬영지. 3만3000평의 부지에 1000여 종의 야생화가 자란다. 야생화에 대한 상식이 없는 초보자를 위해 꽃 이름, 학명 등을 소개해뒀다. 계절별로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야생화를 판매하기도 한다.

영동고속도로 진부 나들목에서 6번 국도 오대산 월정사 방향으로 가다가 오대산호텔, 오대산청소년수련원을 지나면 입구 간판이 보인다. 어른 3000원, 중고교생 2000원, 어린이 1500원. 033-332-7069

○ 세계꽃식물원(충남 아산)

아산 지역 화훼단지 조합원들이 일본 수출용으로 키우던 꽃들을 테마별로 묶어 조성했다. 5000평 규모의 실내 식물원. 특히 세계동백관은 30여 종의 동백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동백전문공원이다. 도고온천에서 5분 거리. 어른 5000원, 어린이 3000원. 041-544-0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