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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즈려밟기]지리산중산리~장터목

입력 | 2005-01-13 15:59:00


《지리산에 오르면 백두산까지 강을 건너거나 산을 가로지르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다. 천왕봉에서 천지까지 산의 마루금(능선)이 한 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반도 지형의 근골을 이루는 주요 산은 하나의 거대한 산줄기를 형성한다. 이것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이다. 이 땅에 태어나 대간의 마루금을 밟아 보고픈 것은 누구나 갖는 바람.

그러나 남한만 해도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 진부령에 이르는 장장 640km를 종주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올 한 해는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갯길을 독자들에게 안내한다. 또 산행뿐 아니라 인근 가볼 만한 여행지나 오지마을도 함께 소개한다.》

오전 4시. 중산리 계곡(경남 산청군 시천면)의 골에 갇힌 어두운 하늘 위로 뭇별이 반짝인다. 잿빛 하늘의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초롱초롱한 별, 별, 별…. 어찌 그리도 많고 밝던지 딴 세상에 온 듯하다. 하늘 저편에는 조각난 반달이 별과 함께 길고 긴 겨울밤을 함께 새운다.

칼바위 지나 로터리 대피소에 이르는 2시간여의 산행 길. 고된 다리를 쉬게 한 뒤 다시 오르던 중 반짝이는 불빛을 본다. 법계사다. 아직 골 안 산중은 어둠 천지고 대처의 속인들은 깊은 잠에 빠질 시각. 그러나 스님들은 이미 새벽 예불에 아침 공양까지 마치고 일상을 시작한 지 오래다.

오전 7시 천왕봉(天王峰·1915.4m) 바로 아래 난간에 이를 즈음. 그윽한 여명 물리치고 먼동 트던 동편 하늘로 흰 구름이 떼 지어 몰려든다. 태양열로 인한 공기의 대류가 시작된 탓이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의 해돋이. 별빛 초롱대던 맑디맑은 새벽하늘을 보고 오늘만큼은 만나리라 자신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는 운이 나쁘지 않았다. 운해(雲海) 위로 앳된 해를 볼 수 있었으니.

드디어 천왕봉이다. 4시간의 산행 내내 바람 한 점 없었건만 정상에 오르니 몸을 가누기 힘든 강풍이 사방에서 불어온다. 그 바람 속에서도 정상의 돌무더기 꼭대기에 놓인 ‘천왕봉’ 표석은 요지부동이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표석 뒷면의 글귀다. 대륙의 기상을 예서 폭발시키는 백두대간의 시작점 지리산. 이 산에 오름은 내 안에 선연한 백두산의 정기를 다시금 확인하는 의미 있는 여행이다.

이제 대간 종주다. 산의 마루금을 따라 걷는다. 정상 표석을 뒤로하고 돌무더기를 내려선다. 산마루는 온통 흰 눈에 덮여 있다. 좌우 앞뒤 그 어느 곳도 막힘없이 온 세상이 훤히 바라다보인다. 세상 꼭대기에 오른 듯하다. 마루금 따라 제석봉으로 가는 길. 왼편으로 새벽 내내 오른 중산리 계곡(산청)이, 오른편으로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 땅이 보인다.

순식간에 흰 구름이 온 산 중턱을 에워싼다. 운해다. 구름 위 산정은 더더욱 별천지다. 고된 산행의 피로가 싹 가시는 순간이다. 제석봉 근방은 죽어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이 나뒹구는 민둥산이다.

이어 닿은 곳은 장터목. 지리산 양편의 함양과 산청 두 고을 사람들이 제각각 물건을 가져와 팔고 사던 산중 장터다. 그리 넓지 않은 산마루 평지에는 조리실과 숙소(마루침상)를 갖춘 산악대피소가 있다. 헬기로 공수해 온 식료품과 약품도 판다.

이제 하산할 시간. 함양의 백무동 혹은 산행 출발지인 산청의 중산리 어느 편으로도 갈 수 있다. 그 길은 모두 장터목으로 물건 지고 이고 오르던 선조들의 땀이 서린 옛길이다.

○ 산행 정보

백두대간 마루금

◇코스 ▽올라가기=중산리∼칼바위∼로터리 대피소∼법계사∼천왕봉(7.4km) ▽마루금=제석봉∼장터목 대피소(1.7km) ▽내려가기=장터목∼유암폭포∼중산리계곡(5.3km)

◇주의사항 ▽야간산행 금지=일출 일몰 2시간 전 금지(1월 1일만 제외) ▽식수=탐방로 샘이 얼어붙고 대피소에는 물이 부족하니 산행 전 충분히 확보 ▽대피소 숙박=지리산국립공원 홈페이지(www.npa.or.kr/chiri)를 통해 1인당 3명까지 2∼15일 이전 예약. 이용 시 신분증 확인. 이용료는 연하천 피아골 뱀사골(이상 5000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7000원.

◇문의 전화 ▽지리산 관리사무소=055-972-7771∼2 ▽중산리분소=055-972-7785 ▽장터목 대피소=016-883-1750

함양·산청=조성하 기자 summer@donga.com

▼3개도 5개시군에 걸친 지리산 1500m 넘는 준령만도 10여개▼

산 둘레만 320km에 달하는 거대한 지리산은 3개 도의 5개 시군과 15개 읍면이 면해 있다. 천왕봉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비롯하여 해발 1500m 이상 되는 준령이 10여 개나 된다. 지리산을 지붕 삼은 이곳에는 오지마을도 수없이 많다. 천왕봉을 중심으로 동쪽의 북과 남을 아우르는 경남 함양과 산청군을 보자. 함양은 남으로 천왕봉∼형제봉, 북동으로 남덕유산∼아홉새드리의 대간 줄기가 이웃한 전북 장수군과 산청군의 경계를 이루는 험한 산의 아래 고을이다. 산청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 두 곳은 언제 찾아도 산골 느낌이 든다.

○ 함양: 꼭 찾아 볼 곳이 있다. 오도재(750m) 너머 마천면 쪽 중턱의 ‘지리산 조망공원’이다. 함양읍에서 마천면의 칠선계곡으로 가는 도중의 고개인데 구절양장 꼬부랑 도로가 명물이다. 널찍한 주차장에 햇볕 따사로운 카페형 휴게소와 정자각이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지리산의 유려한 자태를 아무런 장애물 없이 감상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 예서 바라다보이는 지리산의 산마루는 하봉 중봉 천왕봉은 물론 제석봉 세석평전 벽소령까지 이어진다.

◇찾아가기=대전∼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함양 나들목(116km) ◇맛집 ▽대성식당(함양읍 내)=쇠고기국밥, 수육 055-963-2089 ▽옛날할매순대(안의면)=순대국밥 055-962-4306

지리산 약두부

○ 산청: 고려 문신 문익점의 고향으로 원나라로부터 붓두껍에 숨겨 가져온 목화씨를 뿌린 시배지와 그의 유책이 있다. 중부고속도로(대전∼경남 진주) 산청 나들목의 화단에는 하얀 솜처럼 피어난 목화꽃이 지금도 있다. 성철 스님의 고향이기도 해 ‘성철대종사 생가’도 있다. 산행 후 미네랄이 풍부한 광천수로 온욕을 즐기자면 이웃한 경남 하동군의 ‘옥종불소유황천’(055-884-5955·옥종면 정수리)으로 간다. 단성 나들목에서 20번 국도로 하동 쪽 35 km 지점.

◇찾아가기=대전∼대전통영고속도로∼단성 나들목(148km)∼중산리 ◇맛집 ▽지리산 약두부(산청읍)=검은콩두부 요리 전문. 콩비지는 거저 준다. 055-974-0288 ▽춘산식당(산청군청 앞)=추어탕과 한정식(1만 원). 30년 역사. 055-973-2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