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의 방향, 과제 및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우리의 안보 경제 및 남북 관계의 현안들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사고를 전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통일 이후까지 지속할 수 있는 한미동맹을 원하는가. 원한다면 양국은 미래에 실천할 전략적 비전을 공유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양국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안보역할을 분담할 수 있고 현재 추진 중인 미 군사력 재배치와 감축 협상도 성공적으로 타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략 구상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당장 시급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공통의 시각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미국과 신안보선언을 현재 협의하고 있으며 이를 금년 여름에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미일이 1996년에 이미 발표한 선언과 1997년에 채택한 방위협력지침을 9·11사태 이후 부상한 테러와 대량파괴무기위협, 북한과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조정하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 국민 납치 문제로 북한에 대해 경제 제재를 계획하고 있고 중국 핵잠수함의 영해 침범 후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강대국 관계가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한다면 한미 동맹의 장래는 어떻게 될지에 대해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일이후 비전도 공유할 때▼
우리가 독자적으로 이 나라를 지키고 통일 과정을 관리할 힘을 갖지 못하면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을 강화하는 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한국은 미국과 이 땅의 평화와 비핵화 및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공동으로 추구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치를 공유한다는 국가정체성을 선명하게 과시해야 할 것이다. 양국이 이런 인식공동체를 구성할 때 국민이 안심할 것이고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러시아도 그에 적응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가 한미동맹에서 이탈한다는 이미지를 조성하면 그들은 우리를 더욱 경시하고 역이용하려 할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이미지는 곧 내용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정체성이 뚜렷해져야 한국의 발언권과 영향력은 더욱 증대할 것이며 이는 우리의 수출과 투자 전망도 밝게 할 것이다. 혹자는 우리가 미중, 중일 간에 중립 또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자면 국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희망적인 사고에 불과 하다. 국가안보에 관한 한 정치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허세보다도 실속을 차리는 전략적 사고와 균형감각을 가져야 한다. 국내정치 시각에서 대외관계를 인식할 것이 아니라 주변 전략 환경과 힘의 관계 속에서 한반도가 처해 있는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국내정치는 어느 정도까지 개혁할 수 있지만 강대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는 우리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상증대 위해서도 필요▼
물론 우리는 강대국에도 꼭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익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한국 학자들이 실사구시에 의거해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중국은 서울을 명나라 때부터 불러온 이름인 ‘한청(漢城)’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을 여전히 변방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에 대한 중국 당국의 무례도 용납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빈발하는 이런 사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중지를 모아야 한다. 한국은 비록 막강한 군사력은 갖지 못했지만 동아시아 3대 경제대국으로서 ‘한류’가 상징하는 ‘연식 국력(soft power)’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 재앙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미국이 일본 호주 인도와 핵심 그룹을 구성했을 때 왜 한국은 초청하지 않았을까? 우리 외교도 이제 더 이상 실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안병준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