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행복해요”“네 식구가 여행한 것이 겨우 두번이었나.” “따로 산다고 크게 불편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변상욱 찬을 부자가 사진첩에서 사진을 꺼내들고 얘기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변상욱(46·CBS 대기자) 박혜숙 씨(46·가톨릭상지대학 간호학과 교수) 부부가 결혼 20년 동안 함께 산 기간은 2년을 넘지 않는다. 아들 찬을(연세대 공학계열 1년) 딸 찬아(신목고 2년)까지 네 식구가 함께 산 기간은 겨우 6개월. 무슨 콩가루 집안 얘기냐고? 이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분거가족’이 된 것은 잦은 전근, 육아부담 및 교육문제 때문이다.》
일단 다수가 거주한 곳을 기준으로 이 가족의 이주사를 살펴보면 부부가 결혼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어머니 집에 들어갔다가 박씨가 경북 안동에 있는 대학에 전임강사 자리가 나 떠나는 바람에 주말부부가 되는 시기를 ‘본가시대’로 분류한다.
첫째 아이의 육아부담을 고스란히 떠맡던 어머니가 둘째는 안 된다며 등을 떠미는 바람에 처가살이를 하는 시기는 ‘처가시대’.
처남의 아이를 장모가 떠맡는 바람에 처가에서도 쫓겨나 아내 박 씨의 안동 셋방을 넓혀 박 씨와 두 아이가 가정을 꾸리고 변 씨가 주말아빠가 된 시기가 ‘안동시대’다.
아이들이 덜컥 병에 걸리는 바람에 장모가 다시 아이들을 떠맡는 때가 ‘2차 처가시대’, 첫째가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에는 ‘2차 안동시대’가 열린다. 그 사이 변 씨는 아이들과 합류하지 못하고 본가에서, 때로는 지방 발령으로 충북 청주에서 ‘집’과 ‘집’ 사이를 오간다.
박 씨가 직장을 서울로 옮겨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고 잠시 네 식구가 모여 사는 ‘내집시대’를 맞기도 했으나 6개월 뒤 박 씨는 아이들과 함께 다시 안동으로 내려가 ‘3차 안동시대’를 연다. 이쯤 되면 아이들이 ‘우리 집’에 대한 개념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즈음 모처럼의 가족여행지에서 초등학생 아들은, 주소를 묻는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어떤 집이요? 집이 많아서…” 하고 되묻기도 했다.
첫째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대학 진학을 고려해 서울로 전학시키는 바람에 부자는 서울, 모녀는 안동에 사는 두 집 살림이 전개된다(서울-안동 공존시대).
둘째마저 서울로 전학 와 ‘2차 내집 시대’를 열면서 변 씨가 아이들을 맡고 박 씨는 주말엄마가 된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대부분 엄마의 몫 아닌가. “꼭 1등을 해야 되느냐”고 묻는 아들에다가 “행복한 삶”을 강조하는 아빠 때문에 주말엄마는 속도 많이 끓였다.
변 씨는 “당시 아내는 ‘아이들 공부 많이 시키라’며 아이들과 나를 ‘문책’했지만 그 일은 문책받아야할 일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며 “아이들 공부가 가족공동의 과제라고 인식하면 해결은 쉬워지고 가족의 평화와 균형은 유지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내집시대’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사이 변 씨는 울산 부산 발령으로 1년 반이나 주말아빠가 되기도 했다.
“그때는 주말에만 엄마 아빠가 지방에서 올라오고 평일에는 고등학생 중학생인 아이들만 있었습니다. 특히 찬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말에만 엄마 아빠를 봤는데 잘 자라줘 고맙지요.”
그 대신 이들에게 주말은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이다. 어느 ‘집’에서 오건 주말이면 변 씨 부부는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가족을 찾아온다. 변 씨가 청주와 안동을 오갈 때는 편도로 9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현재 주말엄마인 박 씨가 집까지 오는데도 4시간은 잡아야 한다.
변 씨 부자는 “어디서 함께 모여 사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가족을 잘 운영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