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17일 공개한 한일협정 관련 문서의 일부. 정부가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개별 보상권을 포기한 사실이 확인돼 피해자 유가족들의 소송 제기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한 기자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 문서 가운데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방식 및 청구권 협상과 관련된 문서철 5권(총 1200여 쪽)이 17일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제6차, 7차 한일회담 청구권 관련 문서들에 따르면 정부는 생존자(1인당 200달러) 사망자(1650달러) 부상자(2000달러) 등 103만2684명에 대해 총 3억6400만 달러의 배상을 일본 측에 요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정부는 회담 과정에서 일본 측이 피해자들에 대한 개별 배상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정부 차원에서 일괄 배상을 받겠다며 ‘정치적 타결’로 협상을 마무리한 뒤 실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개별 보상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피해자 유족단체와 시민단체들은 국내 피해자들에 대한 추가 보상과 관련 문서의 전면 공개를 일제히 촉구하고 나서 소송사태가 예상된다.
정부는 1975∼77년 사망자 8552명의 유가족에게 1인당 약 30만 원씩 총 25억6560만 원만을 지급했다. 30만 원은 당시 환율로 622달러로, 정부가 일본 측에 요구한 사망자 보상금(1650달러)의 약 38%에 불과하다.
일본은 1965년 5월 14일 일본 외무성 회의실에서 열린 6차회담에서 “한국에 제공하는 자금은 경제협력을 위한 것”이라며 “일본의 일방적인 의무에 입각해서 주는 것이 되면 곤란하다”고 주장한 사실이 이번 문서 공개로 밝혀졌다.
정부는 이번 문서 공개의 후속 대책으로 이번 주 중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한일협정 문서 공개 대책기획단’을 설치해 운영키로 했다.
기획단은 조영택(趙泳澤) 국무조정실 기획수석조정관과 최영진(崔英鎭) 외교통상부 차관을 공동단장으로, 관련 부처 공무원 8명으로 구성되며 앞으로 예상되는 각종 피해 보상 민원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한일수교회담과 관련한 모든 문서를 외교적 문제가 없는 범위에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모두 공개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라며 “외교부는 광복절(8월 15일) 이전 공개에 전력을 다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피해자 보상 문제와 관련해 “보상 문제는 백지상태에서 검토할 것이며 지금으로서는 보상이 있다 없다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특히 다양한 민원을 파악하고 국민 감정을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