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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강영희]겨울 까치가 물고 온 행복

입력 | 2005-01-17 18:02:00


까치였다. 대한(大寒)이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小寒) 추위의 한복판. 영추문 옆 경복궁 돌담길 차도에서였다. 놈은 갸우뚱 까치발을 한 채 2차로 차도에 내려서 있었고, 나는 잔뜩 웅크린 채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어어어어. 그때 나는 보았다. 놈의 주둥이에 물려 있는 나뭇가지 한 조각을.

인왕산 중턱에서 사는 까닭에 까치란 놈이 나뭇가지를 주워 올려 집을 짓는 걸 본 적이 있는 터라, 나는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대충 짐작이 갔다. 까치설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이리도 혹한이니, 부실해서 자꾸만 바람이 새어드는 구멍문을 대충 막아보려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지나친 까치의 모습이, 나뭇가지를 입에 문 채 아스팔트 차도에 엉거주춤 내려선 놈의 모습이 한동안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옹색하고 초라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무심하며 그토록 의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주둥이에 물려 있던 나뭇가지 조각은 집 또는 보금자리를 말하며, 그것은 개체인 동시에 공동체를 의미한다. 행복(幸福)이란 그런 것이다. 주둥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만만치 않은 무엇이지만, 몸뚱이를 아낌없이 던져서라도 손에 넣어야 하는 것. 그럼에도 한 큐에 직방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너’ 또는 공동체를 거치는 스리쿠션의 경로를 통해서만 비로소 ‘나’ 또는 개인에게로 돌아오는 것.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은 극한의 부귀영화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불로장생의 비법을 아는 신선이 산다는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 동네의 뜻이 재미있다. ‘사월’은 마음 심(心) 자에서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러진 부분을 상징하며 ‘삼성’은 세 개의 점을 가리켜서, 양자가 합쳐 마음 심 자를 뜻한다. 신선의 삶으로 표상되는 궁극의 행복은 결국 자신의 마음 속에 숨어 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개발에서 개혁을 거치면서 저마다 사월삼성동으로 가는 지도를 펴들고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의 은밀한 화두로 떠오른 성찰이나 용서, 심지어는 ‘쿨’이나 ‘웰빙’ 같은 단어들도 어쩌면 모두 그곳으로 가는 표지판들이랄 수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근두운과 여의봉을 사용하고 변신술에 능통해 반쯤은 신선이 된 손오공이 서역으로 상징되는 완전한 해탈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월삼성동이라는 골방으로부터 걸어 나와 험한 세상이라는 광장을 가로질러가야 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너’ 또는 공동체를 거치는 스리쿠션의 경로를 뛰어넘어, 한 큐에 ‘나’ 또는 개인으로 직행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세기가 낳은 가장 명철한 지식인으로 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아와 자아가 아닌 세계 사이의 대립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진정한 관심이 생기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은 자신이 당구공처럼 다른 존재와 충돌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단단하고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강물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면서 다른 것들을 포용하는 삶의 일부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근본적인 행복은 무엇보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이 겨울에 내가 까치와 마주친 것은 아마도 길조(吉兆)였지 싶다.

강영희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