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전체 실업률은 3.5%. 2001년(3.8%) 이후 최고치다. 청년(15∼29세) 실업률(7.9%) 또한 1999년(10.9%) 이래 가장 높다. 그러나 이것도 통계수치일 뿐이다. 일주일에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간주된다. 일자리가 없어 구직을 포기한 ‘실망 실업자’는 실업자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니 체감실업률(7.8%)은 공식 실업률의 두 배가 넘을 수밖에 없다.
실업률 3.5%는 선진국에서라면 완전고용 수준이다. 7.8% 실업률도 높지 않은 수치다. 그러나 선진국은 사회안전망에서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노동의 유연성’은 재취업의 적응력을 뜻하지만 우리는 ‘해고의 유연성’에 가깝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하이테크 혁명의 정보화시대가 되면서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제레미 리프킨이 쓴 ‘노동의 종말’에 따르면 1981부터 1991년 사이에 미국의 제조업 부문에서 1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독일에서는 1992년에서 1993년 단 1년 사이에 5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
▼‘만들기’에서 ‘나누기’로▼
한국에서도 지난 6년간 제조업 일자리 60만 개가 사라졌다. 전체 제조업 일자리 중 13% 이상은 해외로 이전했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4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당수가 생계형 주부 취업 등 불완전 고용이어서 제대로 된 고용창출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국현(文國現·56) 유한킴벌리 사장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해법”이라고 말한다. 그 근거는 ‘YK(유한킴벌리) 모델’이다. 유한킴벌리는 1998년 이후 생산라인을 4조 2교대로 가동하고 있다. 주야간 교대로 4일 일하고 4일 쉬는 시스템이다(주간근무 후 1일은 교육). 기존의 3조 3교대에 비하면 산술기준으로 인력이 25% 더 늘어나는데 그만큼 인건비를 늘리지 못한다면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 근로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다. 유한킴벌리 노조 역시 강력하게 반발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기회가 됐지요. 공장가동률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을 때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4조 3교대로 바꾸자고 설득했지요. 그런데 노조에서 기왕 할 바에는 4조 2교대를 하자고 했습니다.”
4조 2교대를 하자 연간 공장 가동 일수가 260일에서 350일로 늘어났고 생산력도 30%가량 증가했다. 그 결과 매출액과 순이익이 90년대 초반에 비해 각각 5배, 16배나 증가했다. 임금도 삭감되기 전보다 높아졌다. 근로자의 휴식과 학습, 노사(勞使) 간 신뢰 형성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 결과다.
“우리나라에서 주 56시간 이상, 연간 2800시간 이상 초장시간 근무하는 근로자가 290만 명입니다. 주 44시간 이상, 연간 22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장시간 근로자도 추가로 630만 명이나 되지요. 이들이 치르는 과로의 대가는 심각합니다. 연간 직장 내 산업재해자가 9만5000명이고 산재사망자만도 2900명이나 됩니다. 산재에 의한 경제적 손실은 12조4000억 원으로 노사분규로 인한 연간 작업손실 2조4000억 원의 5배가 넘지요.”
▼사회적 협약 이뤄내야▼
문 사장은 주 40시간, 연간 2000시간 근무제만 정착시켜도 총 200만 명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물론 모든 업종에 ‘YK 모델’이 적용될 수는 없다. 특히 대다수 중소기업의 경우 일자리 나누기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 때까지 버텨낼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요. 하지만 현재의 과로체제에서 건강과 평생학습의 사람중심체제로 바꿔나가지 않는다면 ‘고용 없는 성장’을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기업, 노동자, 정부가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사회적 협약(協約)을 이뤄내야 합니다.”
일자리 나누기는 문 사장의 ‘꿈’이다. 그는 모두가 함께 꿈꾸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전진우 논설위원 실장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