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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서 공개]“뼈빠지게 일했는데 3400원 지급”

입력 | 2005-01-18 18:07:00


“피를 토하고 죽어도 원통할 일이여….”

정부가 한일협정 문서 중 일부를 공개한 17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인 여운택(呂運澤·82·사진) 옹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본과 한국 정부에 울분을 토했다.

일제강점기 말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제철소에서 2년여 동안 일하고도 돈 한 푼 받지 못한 그는 “일제와 정부 모두 우리를 속였다”며 “이번 문서 공개로 정부가 민간인 청구권을 볼모로 돈을 받아 경제 개발에 투입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우리 정부 역시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여 옹이 월급을 많이 준다는 일본 신문의 허위 광고를 보고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1943년 9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오사카(大阪)의 일본제철소에 도착해 보니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조선총독부의 징용령에 의해 징발된 인원이었다.

그는 오사카의 제철소와 광복 직전 배치된 함경북도 청진의 분공장에서 2년여 동안 뼈빠지게 일했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임금을 회사에 맡겨두면 나중에 틀림없이 준다”는 제철소 측의 말만 믿고 계속 일했지만 제철소 관계자들은 아무런 기약 없이 일본의 패전과 동시에 본국으로 모두 달아나 버렸던 것.

1997년 12월 여 옹은 459.52엔(광복 당시 황소 10마리 값)의 미불임금이 오사카공탁소에 그대로 남아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돈의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일본 오사카지방법원에 냈다. 그러나 법원은 6년에 걸친 재판에서 1965년의 한일협정 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뒤늦게 청구권이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돼 지난해 11월일본 후생성에서 받은 후생연금은 316엔. 우리 돈으로 약 3417원이었다.

여 옹은 “광복 당시 황소 한 마리 값이 50엔으로 후생연금만도 황소 6마리 분에 해당한다”며 “진작 줘야 할 돈을 60년 만에 돌려주면서 물가상승률을 계산하지 않고 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를 성토했다.

여 옹은 또 “일본 정부가 후생연금은 주면서 미불임금은 안 주는데 도대체 기준이 뭐냐”며 “내 월급 내가 달라는데 한일협정이 왜 걸림돌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