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판결보다 화해가 낫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주 인용하는 법언이다. 새만금 소송에 대한 법원의 조정은 심각한 사회갈등을 당사자 간 합의로 풀도록 물꼬를 터준 점에 의미가 크다. 문제는 과연 합의가 가능하냐는 점이다. 사업 책임을 진 정부로선 괜히 시간과 비용만 허비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잘만 하면, 원만한 합의로 매듭지을 수 있는 여지는 새만금 갯벌만큼이나 넓을 수 있다.
갈등 해결의 기본원칙이 몇 가지 있다. 표출된 주장(position)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진정 원하는 것(real interests)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 그중 하나다. 새만금에선 간척과 갯벌 보전이란 양측 입장이 정면충돌해 왔다. 그 자체로 양립 불가능하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해결 난망이다. 그동안 공동조사단 등 거듭된 조정 노력이 무위로 끝난 주요인도 여기에 있다. 그럴 땐 원점으로 돌아가는 게 좋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약에서 비롯됐다. 이 사업의 실질적 주인인 전북도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지역발전, 소득증진이다. 새만금 간척은 그 방편이다. 생태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전북 측이 새만금 사업에 집착해 온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거액의 국고 지원이 이미 확보된 사업이란 점이 그중 하나다. 지금 중단되면 남는 것은 방조제뿐일 것이라고 우려한다. 앞으로 민관공동위원회가 구성되면, 먼저 논의해야 할 의제의 하나가 이것이다. 새만금 사업이 장차 어떻게 결정되든, 그에 상당하는 규모의 예산이 전북지역 발전사업에 지원되도록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중앙정부나 국민 입장에선 추가부담이 생기는 게 아니므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단, 신뢰의 문제나 제도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법원이 권고한 특별법 형태로 보장하는 것이 한 방법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북은 간척 외에 다양한 지역발전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새만금이 아닌 다른 곳의 지역개발사업을 계획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새만금에 국한해 대안적 개발방안을 찾다보니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안이 나오기 힘들었다. 새만금 지역의 경우, 갯벌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이미 완공된 방조제를 활용하는 부분개발 방안을 찾으면 환경단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땀 흘려 온 농림부 및 농업기반공사의 노고를 국민이 인정해주고,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케 하는 방안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향후 위원회를 구성해 합의를 모색할 때의 관건은 논의구조가 얼마나 공정하고 효과적으로 짜여지느냐는 것이다. 수년 전 새만금 공동조사단 운영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많다. 특히 첨예한 사안을 다루는 회의에서는 진행자(facilitator)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위원장 등 진행자는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고 논의의 공정한 진행에만 전념하는 게 좋다.
국민적 관심사이니만큼 위원회의 당사자 간 협의가 국민적 합의로 수렴되도록 논의구조를 다양하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론의 사려 깊은 역할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그 논의 결과 몇 가지 부분 쟁점이 미타결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최종적으로 공론조사 등을 통해 그 결정에 따르기로 정해 놓으면 논의를 조속히 매듭짓는 데에 효과적이다.
우리 정부의 역량과 시민들의 지혜가 잘 합쳐지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역개발 사례, 생태계 보전 사례, 갈등해결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강영진 성균관대 국정관리대학원 겸임교수·갈등해결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