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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엄태웅 “6년쯤 삭혔더니 연기맛 나나봐요”

입력 | 2005-01-19 17:58:00

김미옥 기자


“이제야 진짜 배우가 된 것 같습니다.”

KBS2 드라마 ‘쾌걸 춘향’(월화 밤 9:55)에서 ‘변학도’로 나오는 엄태웅(31)의 주가가 급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내온 그는 아직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고전을 21세기 스타일로 패러디한 ‘쾌걸 춘향’에서 변학도는 탐관오리가 아니라 냉철하고 깍듯한 성격의 연예기획사 사장이다. 춘향에게 사랑을 느끼고 보살펴 주면서 몽룡을 향한 춘향의 일편단심을 자신에게로 돌려보려는 캐릭터다.

‘쾌걸 춘향’의 시청률은 1∼4회 14∼18%에 머물렀으나 17, 18일 방영된 5, 6회엔 각각 23.6%와 25.9%(TNS미디어코리아)를 기록했다. 이 같은 수직상승은 변학도가 본격 등장한 시점과 일치한다.

“변학도의 쿨(cool)한 모습이 시청자에게 어필한 것 같습니다. 변학도는 여자에겐 부드럽고 일에는 열정을 쏟는 남자로, 세상을 마음대로 요리할 듯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죠. 반면에 사랑에는 실패한 불쌍한 인물이죠. 춘향이 사랑을 받아주지 않으니까.”

‘쾌걸 춘향’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춘향과 학도를 맺어달라’는 글이 넘쳐난다. 우유부단하고 철없이 딴 여자를 곁눈질하는 부잣집 도련님 몽룡보다 자수성가형 학도가 춘향에게 훨씬 더 어울린다는 반응이다.

엄태웅은 무명시절이 꽤 길었다.

경기 의정부시 경민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그는 1997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에서 단역인 국밥집 종업원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이후 2003년 영화 ‘실미도’에서 훈련병 ‘원상’ 역으로 주목받기 전까지 6년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내 연기를 펼칠 날이 오겠지 하고 막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게 가장 답답했습니다.”

그는 ‘실미도’를 실질적 데뷔작으로 꼽는다. ‘실미도’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후 KBS2 ‘구미호외전’과 영화 ‘가족’에 출연했다. KBS2 드라마시티 ‘제주도 푸른 밤’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배역을 잘 소화해 2004 KBS 연기대상에서 단막극 특집상을 받기도 했다. 27일 개봉될 영화 ‘공공의 적 2’에선 정준호의 비서 역으로 나온다.

오랜 무명시절 끝에 찾아온 단비지만 그는 “어린 나이에 스타덤에 올랐다면 흐지부지 연기인생을 마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나이가 좌절과 희망도 알고 세상도 알 때여서 연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수 겸 탤런트 엄정화의 동생이다. 그게 연예계 경력에 도움이 됐을까.

“배역을 맡거나 연기를 하는 데 도움이 안 됐어요. 연예계 생리 아시잖아요. 홀로 서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그는 닮고 싶은 배우로 집중력과 근성이 있는 설경구,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최민식을 꼽았다.

“무슨 역이든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꿈(연기)을 한번 잃어본 사람은 그 꿈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죠.”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