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연예인 X파일’ 파문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제일기획, 문건 작성에 참여한 연예 기자와 리포터, 문건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은 누리꾼(네티즌) 등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이들이 그렇게 나쁜 것인가? 이 파문에서 가장 악랄한 행위를 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제일기획은 기업과 CF 모델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중매쟁이다. 당하는 사람은 기분 나쁘겠지만 중매쟁이에게 신원조사는 당연한 일이다. 근거 없는 소문까지 포함해 취재한 기자에 대해 경솔함을 탓할 수는 있지만 그 기자가 중차대한 잘못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다. 파일 유출 책임이 있는 용역회사와 제일기획의 관리 소홀도 문제지만 지금같이 비난의 집중포화를 맞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문건 파일을 올리고 내려받은 누리꾼들은 도덕적 비난을 받고 있고, 명예훼손 같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관음증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의 하나이고, 연예인의 사생활은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최고의 소재다. ‘연예인 X파일’이라는 선정적 제목을 보고도 자제하라는 건 가혹한 요구다. 누리꾼들의 잘못도 경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몇몇 사람이 P2P를 통해 문건을 개인적으로 돌려보는 작은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이것을 일파만파로 확대되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다. 진위조차 알 수 없는 소문 수준의 문건이 포털 사이트의 톱뉴스 항목에 오르며 공신력 있는 정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주변 소문이 담긴 유명 연예인 평가보고서가 인터넷을 통해 단시간에 널리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빚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더욱 나쁜 행위는 기사에 따라붙은 수천 건의 댓글을 거의 방치한 일이다. 기사 자체는 그런 문건이 있다는 보도였지만 누리꾼들은 댓글을 통해 문건의 소재를 서로 묻고 알려 주며 손쉽게 내려받았다.
인터넷 사이트는 기사는 물론 댓글도 관리할 책임이 있다. 모든 댓글을 관리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겠지만 중요한 사안은 댓글도 철저히 관리해야 했다. 한 포털 사이트의 관계자는 현재 인원으로 기사나 댓글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무리라고 변명했다. 그렇다면 이익 많이 난다고 자랑하지 말고 직원이나 더 뽑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것도 힘들면 아예 뉴스 서비스를 포기하는 게 좋다. 이제 포털 사이트는 주요 일간지 못지않은 뉴스 공급원이다. 거대해진 덩치에 걸맞게 언론으로서의 소양과 철학, 책임감을 자각해야 한다.
정보기술(IT)은 중요한 산업이고 포털 사이트는 IT의 핵심이지만 아직 미숙한 면이 많다. 기업적으로는 어린 축에 속하는 포털이 집안일에 솔선수범하며 돈도 잘 벌어 오는 효자가 되기를 바란다. 힘 좀 있다고 툭하면 사람 두들겨 패는 망나니로 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
아이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 벌을 받고 진심으로 반성하게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의 법적 책임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포털 사이트는 깊이 반성하고 자정 노력을 통해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를 깨달았으면 한다.
김지룡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