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에 걸친 자신의 지적 편력을 정리해 ‘행복한 허무주의자의 열정’(미다스북스)을 펴낸 박이문 연세대 특별초빙교수(75·사진)는 ‘호모 로고스’다.
그가 평생 이성(로고스)을 통해 세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추구한 철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평생 ‘철학적 글쓰기’와 ‘시적 글쓰기’를 오가며 언어(로고스)의 문제에 천착해왔기 때문이다.
“저는 시인을 꿈꿨지 학자를 꿈꾼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철학교수가 된 것은 지적 혼돈을 극복하기 위한 지적 방랑의 결과물이었을 뿐이지요. 그런 훈련을 거쳐서 깨우친 것은 ‘철학적 글쓰기’와 ‘시적 글쓰기’를 결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그렇지만 그 불가능한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불문과에서 보들레르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그가 불문과 교수라는 지위를 박차고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말라르메로 다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스스로의 인생을 오직 앎에만 바치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자신과 동갑내기였던 자크 데리다(당시 소르본대 철학과 조교)를 스승 삼아 철학 공부를 다시 한 것도, 미국에서 영미분석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30년간 이국 타향에서 외롭고 배고픈 철학교수로 살아간 것도 모두 지적 갈증을 해소하려는 열망 때문이었다.
“삶의 총체적 의미를 묻는 프랑스 철학, 그리고 언어와 논리의 엄밀성을 추구하는 영미철학 사이에서 제가 깨달은 것은 세계는 언어를 통해 인간의 머릿속에서 구성되는 것이며, 인생은 결국 우리 각자가 작가가 돼서 써가는 이야기(텍스트)라는 점이지요.”
혼돈상태의 세계는 그에게 언어라는 빛을 통해 밝혀지고 ‘의미의 질서’를 갖게 되며, 글쓰기는 객관적 세계의 재현이나 복제가 아니라 그 세계를 좀 더 투명하면서도 풍부하게 인식하기 위한 지적 욕망이다.
철학적 글쓰기는 그 세계를 총체적이고 투명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총체성과 투명성에 집착하다보면 개별성과 구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시적 글쓰기는 바로 그런 철학적 글쓰기가 잃고 왜곡시킨 세계의 구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따라서 그에게 이상적 글쓰기는 이 두 가지 글쓰기를 번갈아 가며 반복하는 것이다.
그의 독특한 ‘둥지의 철학’도 그런 사유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철학이 세계의 관념적 건축이라면 그것은 기계적이고 반생태적인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정교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생태친화적인 새의 둥지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시적인 호모 로고스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