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수면 위를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 바람의 영향을 덜 받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밀집대형으로 이동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계의 철새 어떻게 이동하는가?/폴 컬린저 지음·신선숙 옮김/303쪽·1만8000원·다른세상
한때 ‘철새 정치인’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름대로 규칙과 규율이 있는 철새를, 줏대 없이 옮겨 다니는 정치인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무리 전체가 이동하는 철새는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무리 속의 일부만 번식지를 떠난다. 주로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한다는 점에서도 진짜 철새와 ‘사람 철새’는 닮았다. 추운 곳이라도 양식이 풍부하면 새들은 떠나지 않는다.
미국 뉴저지 주 케이프메이 조류관측소장을 지낸 저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철새들의 비밀 신상자료를 이 책에서 남김없이 공개한다.
○얼마나 날아가나?=최대 1년에 2만5000km를 이동한다. 지구 둘레의 60%를 넘는 거리다. 검은가슴물떼새는 하와이에서 알래스카까지 3800km를 ‘논스톱 비행’한다.
○무슨 힘으로 그렇게 멀리 날아가나?=철새들이 장거리 비행에 쓰는 연료는 ‘지방’이다. 무게당 연소 효율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 1g으로 200km를 가는 새도 있다. 이동 직전의 철새는 하루 동안 체중의 10% 이상을 몸에 비축하기도 한다. 이 무렵의 에스키모쇠부리도요는 피부 바로 밑까지 지방으로 가득 차서 ‘만두새’로 불린다.
○왜 무리를 짓나?=캐나다기러기와 같은 몇몇 철새는 앞의 새 뒤에 딱 붙어 비행한다. 앞에 가는 새의 날개가 만드는 소용돌이를 이용하면 비행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맹금류는 대기 곳곳에 생기는 상승기류를 쉽게 찾기 위해 집단이동을 한다.
○방향을 어떻게 찾나?=유리무당새는 별자리로 방향을 정한다. 기러기나 도요새 유는 체내에 ‘나침반’을 가진 것처럼 이동 중 일정하게 방위각을 유지하며, 그 결과 최단거리 이동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매일 생기는 ‘나침반’의 오차는 지는 해를 보며 보정한다.
○언제 이동하나?=철새에 대한 일반적 이미지와 달리 대부분의 철새는 밤에 이동한다. 대기가 시원해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집이 크고 글라이더처럼 유영하는 맹금류는 주로 낮에 이동한다. 햇볕이 대지를 달구면서 상승기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철새가 많은 곳은 어디인가?=철새는 바다 위를 오래 나는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대륙이 가늘게 이어지는 중미, 아프리카와 유럽이 가깝게 만나는 지브롤터 해협 등이 철새의 집결지가 된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가 만나는 이스라엘은 매년 가을 200만 마리의 철새가 지나가 장관을 이룬다.
저자가 풍성한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는 매년 송전탑에만 수천 마리의 철새가 부딪쳐 죽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인간이 변화시킨 환경이 매년 철새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여행을 강요하는 것이다.
번식지나 월동지 못지않게 철새 ‘경유지’의 산림 남벌 등 환경 변화 하나도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법안이나 규제 못지않게 철새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하나가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가 미국인인 만큼 이 책은 주로 미주 지역의 철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사실에 아쉬움이 남는 독자에게는 ‘한국의 철새’(윤무부 지음·대원사)가 도움이 될 만하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