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는 왜 철학교사가 될 수 없을까/미셀 옹프레 지음·이희정 옮김/416쪽·1만9800원/모티브
상상력과 창의적 사고는 언제나 논술시험의 중요한 평가항목이다. 어떻게 해야 창조적 관점과 생각을 기를 수 있을까?
막연하기만 한 창의력 교육. 철학은 여기에 대한 좋은 훈련도구가 될 수 있다.
의문이 없으면 새로운 생각도 없다. 모든 게 당연한 상황에서는 이성이 발동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은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는 학문이다. 철학은 ‘상식’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던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새로운 가치관을 이끌어 낸다. 동서양 엘리트들의 교육에서 철학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사고를 위한 교재로 손색이 없다. 이 책에는 상식을 뒤집는 다양한 질문들이 등장한다. ‘여러분은 휴대전화 없이 지낼 수 있을까?’ 같은 가벼운 물음에서부터 ‘대마초는 왜 마음대로 살 수 없을까?’처럼 도발적인 질문, 나아가 ‘공공장소에서는 왜 자위행위를 하면 안 될까?’ 같은 망측한 의문까지.
언뜻 보기에는 하나같이 단순해 보이지만, 답을 내려고 하면 결코 녹록지 않다. 예컨대 네덜란드 사람들은 ‘대마초는 왜 마음대로 살 수 없을까?’라는 질문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네들에게는 대마초가 합법적 약물인 탓이다. 여기에서 새로운 의문이 싹튼다. 우리나라나 프랑스에서 대마초 흡입은 엄연한 범죄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기준은 국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인류 공통의 도덕’ 같은 말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계속된다. 논의가 거듭되고 깊어질수록 생각도 점점 더 추상적이고 정교해져 간다. 선정적이기까지 한 물음을 출발점으로 하여 고도의 철학적 탐구에까지 이르는 구도다.
각 꼭지의 내용이 워낙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는 데다 익살과 유머도 간간이 섞여 있어 깊은 사색이 필요한 내용인데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바칼로레아로 다져진 프랑스 인문교육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만만한 책이 아니다. 철학 연습은 요약 암기 등의 편법이 결코 통할 수 없는 분야다. 자기 힘으로 스스로 생각해 보기 전에는 만족할 만한 답을 내기 어렵다.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는 학생은 아마도 탈진할 정도로 사색에 사색을 거듭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하다.
생각은 괄시받고 감각만 대접받는 시대,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아이들도 깊고 넓은 영혼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안광복 서울 중동고 철학교사·학교도서관 총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