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삶이 끝없는 괴로움이라는 것을 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나는 부디 곱게 늙어 편안히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만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서울의 한 노인시설에서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는 미술평론가 이경성 선생(86)이 수필집에 남긴 글이다.
미대 교수와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병원비가 없을 만큼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의 고백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을 너무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최근 결식아동에 대한 부실(不實) 급식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켰지만 사실 결식학생보다는 결식노인의 수가 훨씬 많다. 홀로 살며 끼니를 거르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가. 중년 세대에겐 노인의 힘든 상황이 미래 자신의 모습으로 비치기 마련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노인 자살도 불안 심리를 증폭시킨다. 자연스레 ‘오래 사는 것은 곧 재앙’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재앙인가, 축복인가▼
남의 일로 여겨졌던 노인대책이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평균수명의 급속한 연장 탓이다. 한국은 앞으로 13년만 지나면 인구의 14% 이상이 65세 이상으로 채워지는 고령사회로 진입한다. 그 뒤로 또 7년이 지나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超)고령사회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고령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무병장수(無病長壽)’라는 인간의 숙원을 실현하는 축복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한 유럽과 일본이 모두 선진국이므로 한국도 선진화를 위해 거쳐야 할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인대책의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우아한 노년(老年)’을 맞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노인도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건강의 측면에서 인간은 ‘우아한 노년’에 바짝 다가서 있다. 나이는 들었으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들은 과거에 없던 세대라는 뜻에서 이들을 ‘더해진 세대(gained gener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곤경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일자리 마련과 같은 정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개인도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 천주교 수녀들은 치매에 잘 걸리지 않고 일반인보다 훨씬 오래 산다고 한다. 이들을 장기간에 걸쳐 연구해 온 데이비드 스노든 박사에 따르면 수녀들이 노년을 잘 보내는 비결은 평안한 마음과, 서로 믿고 도와주는 공동체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평균수명이 90세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백년의 마라톤’을 뛰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과 태도가 필요하다.
▼해결책은 경제력이다▼
설령 모든 준비가 완벽히 갖춰지더라도 고령사회는 젊은 세대에게 상당한 부담을 지우는 구조임에 틀림없다. 사회적 역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국가재정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국민소득 1만 달러의 경제수준에선 한국이 감내하기 힘들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선진국들은 벌써 고령사회에 진입하고도 별 무리 없이 나라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노인 문제도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일임을 보여준다. 반면에 한국에서 지지부진한 경제상황이 계속된다면 고령사회가 실제로 모두에게 큰 재앙으로 닥칠 것이다. 노인문제의 해결도 결국 국가경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이 고령사회로 진입하기까지는 10여 년이 남았을 뿐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