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교사가 검사 아들의 시험 답안을 대리 작성한 사건이 벌어진 서울 강동구 배재고에서 교사들이 집단으로 불법 과외를 하고 이전에도 답안지 대리 작성 시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집단 불법 과외 의혹=답안을 대신 작성한 오모 교사(42)는 서울 강동구 길동 T오피스텔의 방을 빌려 A 검사 아들과 함께 살다시피 했고 다른 교사들도 자주 드나들었다는 인근 상인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오피스텔 인근 세탁소 주인은 “옷을 갖다 주러 가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있었다”며 “이 학생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 주인은 “밥을 함께 먹으러 온 오 교사에게 ‘이 학생이 아들이냐’고 물었더니 ‘조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 오피스텔 소유주 권모 씨는 “지난해 초 계약을 했으며 매달 A 검사 부인 이름으로 월세 50만 원이 입금됐고, 이달에만 A 검사 이름으로 입금이 됐다”고 말해 A 검사와 오 교사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또 인근 상인들에게 일부 교사들의 사진을 보여 주자 “오피스텔에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들이 맞다”고 말해 이 학교 교사들이 집단으로 과외를 해 왔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 학교 B 교사는 “오 교사와 어울려 다닌 C 교사는 3학년 담당인데도 1학년 수학 담당인 한 기간제 교사가 시험 출제를 할 때 수시로 들여다보거나 문제를 자주 물어 보곤 했다”고 밝혔다. C 교사는 이 오피스텔에 드나들었다고 상인들이 증언한 교사들 중 한 명이다.
▽“답안 조작 더 있다”=오 교사 이외에도 교사들이 답안지를 조작하는 일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2003년 2학기 영어 시험에서 한 학생이 답안을 OMR카드에 절반밖에 옮겨 적지 못하자 이튿날 이 학생의 담임교사가 영어 담당인 기간제 교사 박 모 씨에게 시험지 답안을 OMR카드에 옮겨 적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B 교사는 “내가 ‘누가 힘없는 기간제 교사에게 파렴치한 짓을 하라고 하는 거냐’고 소리를 질러 사건이 무마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2001년 교장이 보충수업비 횡령 혐의로 고발된 사건과 2004년 7월 학교법인 소속 중학교 운동선수가 전지훈련 도중 숨졌을 때도 오 교사는 “아는 검사에게 부탁해 잘 해결했다”고 자랑을 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B 교사는 “오 교사가 굳이 1학년 담임을 자청한 까닭에 대해 ‘서울고 출신 검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 그 형님 아이를 보살펴 줘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오 교사의 시험 답안 대리 작성 사건과 교사들의 불법 과외 여부 등에 대한 감사 결과를 24일 발표할 예정이다.
▽“배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1885년 설립된 120년 전통의 명문 사학인 배재고에서 ‘시험부정’이 생기자 재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졸업생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배재고의 한 영어교사는 “재학생과 학부모들의 문의와 항의가 엄청나다”며 “졸업생들도 수시로 전화해 ‘배재고 출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항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졸업생인 ID ‘배재학당’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아들에게 늘 자랑해 온 모교에서 이런 일이 생겨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