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슈렉’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의 천하분할 지형을 바꾼 드림웍스가 이번에는 판타지 모험영화에 뛰어들었다. 베스트셀러 연작동화 ‘레모니 스니켓’을 영화화한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한 영화 두 소리’의 부부 평론가 남완석 교수(전주 우석대)와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 씨는 이 새 모험 시리즈를 ‘비교문화학’과 ‘정신분석학’이라는 두 개의 다른 돋보기로 해독했다. 부부의 목소리는 그 어느 쪽으로 들여다보더라도 ‘레모니 스니켓’에는 풀어낼 만한 상징이 풍성하다는 지점에서 일치했다.》
○ 낡은 유럽의 위협과 신세계 미국의 응전
▽남완석=‘레모니 스니켓’의 탄생은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 같은 판타지영화 붐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겠지. 그런데 ‘해리 포터’하고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차이가 있어. 주인공인 보들리어 가(家) 3남매가 부모 잃은 고아라는 점은 해리 포터와 같지만 해리 포터가 유럽적이라면 레모니 스니켓은 철저히 미국적 정서와 가치관을 대변한다는 거야.
▽심영섭=나는 그런 비교문화적인 측면보다는 이 영화에 담겨 있는 심리적 원형(archetype)성에 더 눈이 가던데. 이 영화에 등장해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을 맡는 친척들은 한 사람 한 사람 다 현대인의 전형적 정신병리를 갖고 있어. 올라프 백작에게는 눈이 대단히 중요한 아이콘인데 내 환자들을 보면 대개 편집증과 망상이 심한 경우 눈을 아주 강조해서 그려. 냉장고가 넘어질라, 가스가 폭발할라 매사 두려워하는 조세핀 숙모는 공포증이 심하고, 아이들에게 너그러운 파충류학자 몬티 아저씨조차 기이한 취향의 타자(他者)이지. 나는 이 영화가 아이들이 이 모든 것들과 대면하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생각해.
▽남=흥미로운 해석이야. 하지만 문화적인 맥락에서 보아도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알레고리가 깔려 있어. 똑같이 고아가 된 상황에서 해리 포터는 ‘마법학교’로, ‘레모니 스니켓’의 보들리어 가 아이들은 ‘친척들’에게 보내지지. 학교가 뭐야. 전통을 익히고 자기가 속한 문화를 배우는 대표적인 ‘제도’잖아. 그러니까 해리 포터는 전통의 승계 속에서 모험을 하는 데 비해 보들리어 3남매는 이런 공적인 제도의 우산 아래 들어가는 게 아니라 친척에게 맡겨져. 이 친척들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위협이지.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은 각각 자신이 가진 창의성(발명가인 맏딸 바이올렛), 축적된 지식(독서왕 클라우스), 인내심(물기대장 서니)이라는 덕목을 갖고 독립적으로 세상과 맞닥뜨려. 문제를 제도로 푸는 ‘해리 포터’의 유럽 방식과 개인의 힘으로 헤쳐 나가는 ‘레모니…’의 미국식이 극명히 대비되지.
○ 의식과 무의식의 힘을 겸비한 막강 3남매의 성장기
▽심=그래? 아이들이 가진 비범한 능력을 유럽과 미국의 코드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코드로도 분류할 수 있어. 바이올렛과 클라우스의 발명력, 지식은 문명을 이루는 의식적인 능력이야. 반면 무엇이든지 물면 놓지 않는 서니의 힘은 구강공격적인 특성이자 무의식적인 에너지이지. 아이들이 모험 과정에서 만나는 몬티 아저씨는 무규칙적인 세계를 탐험하는 사람이고, 조세핀 아주머니는 문법책이라는 규칙 속에서 살아. 한 인간의 성장은 이런 규칙과 무규칙, 의식과 무의식의 한쪽이 아니라 양쪽을 오갈 때 건강하게 이루어진다고 영화는 말해.
▽남=그런데 왜 그렇게 고아에 관한 내러티브가 많을까? ‘올리버 트위스트’ ‘소공자’ ‘소공녀’ ‘캔디’ ‘키다리 아저씨’도 고아야. 부모에 의해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 특별한 탄생은 역시 영웅신화나 성장신화의 기본인 거야.
▽심=난 마지막 부분이 재미있었어. 올라프 백작이 갖고 있는 눈과 연관된 음모가 망원경을 통해 풀리지. 같은 눈인데 상징하는 차원이 달라. 아이들이 올라프의 위협으로 상징되는 의심과 편집증의 눈을 극복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제2의 눈을 갖게 된다는 거야. 이건 다가올 카메라의 시대, 영화의 시대를 예언하는 것 같기도 해.
○ 포스트모던적인 환상
▽남=시대 구분이 나와서 얘기인데, 이 영화의 시점이 언제라고 생각해?
▽심=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하는, 한 마디로 포스트모던의 시간이지.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팀 버튼 적인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어. 시간만이 아니야. 각각의 인물들도 구미 문화사 혹은 영화사 속에 있는 중요한 인물들을 상징해. 유언집행인인 포는 에드거 앨런 포를 연상시키고 클라우스는 독일, 서니는 미국식 이름이잖아. 팀 버튼이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올라프 백작은 ‘노스페라투’의 올라프 백작을 연상시켜. 다국적인 상상력이야. 게다가 분명 올라프 눈의 상징은 르네 마그리트의 ‘가짜 거울’이란 그림이나 에셔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 같아. ▽남=‘레모니 스니켓’이 판타지 영화 붐의 연장선상에서 탄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판타지에 대한 태도에서는 크게 차이가 있어. 우선 이 영화는 관객들이 판타지 속으로 몰입하는 걸 계속 방해해. 의문에 싸인 화재사건이나 보들리어 아이들의 불행은 이미 예언되고 해피 엔딩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배신당하지. 일종의 거리 두기 수법이야.
▽심=영화 도입부에 ‘디즈니 만화’ 같은 장면이 삽입되고 ‘영화는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고 반전하지. 이건 디즈니의 가족주의를 비꼬는 것이자 달콤한 판타지가 없다는 선언이기도 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가족 혹은 판타지에 대한 공포를 갖고 있어. 조세핀 숙모의 집은 바람만 불면 날아가는 판타지의 취약성을 극단적으로 시각화하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이란 제목에서 ‘위험하다’는 건 기본적으로 판타지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는 의미처럼 들려.
○ 짐 캐리, 인간의 얼굴을 가져라
▽남=짐 캐리의 역할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 올라프 백작, 스테파노 박사, 샴 선장의 1인3역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한계도 보였던 것 같아.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정통연기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심=짐 캐리는 기본적으로 자기분열증적인 인간이야. 자아변용의 힘이 아주 강한데 또한 나르시시스트지. 최근 연기는 더 나르시시즘적으로 가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코미디를 줄이고 내면을 보여주면 안 될까. ‘라이어’에서 보여줬던 수준을 넘어서서….
▽남=그렇게 하면 제작자들이 좋아할까? 더 이상 짐 캐리 같지 않은 짐 캐리를?
▽심=난 짐 캐리의 갈 길에 대해 로빈 윌리엄스를 생각해 봐. 로빈 윌리엄스 역시 짐 캐리처럼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시작했지만 진정성이나 인간미가 보이잖아. 미셀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에서 그렇게 열연을 했다니 기다리는 수밖에. 짐 캐리 평가는 그때 다시 하자고.
정리=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