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쟁을 통한 신분상승의 나라로 그려져 온 미국에서 왕조 같은 가문정치와 대물림 정치가 번져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3일 보도했다.
신문이 거론한 사례는 이렇다. 남편이 사망한 지역구에 출마 선언한 아내(일본계 로버트 마쓰이 하원의원의 부인 도리스 마쓰이), 주지사 출마를 희망하는 아버지가 떠난 상원의원 자리에 곧바로 당선된 딸(알라스카주 리사 멀코우스키 의원), 공천결정을 위한 경선을 치르기엔 너무 시간이 촉박한 상태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바람에 당 지도부에 자기 아들을 공천하도록 한 아버지(윌리엄 리핀스키 전 의원), 한 지역구에서 1794년 이후 무려 211년간 한 집안의 6대가 대물림해 하원의원 독차지 하기(뉴저지주 프랭링귀슨 의원가문)….
할아버지가 상원의원, 아버지가 대통령을 지냈고, 동생이 현직 플로리다 주지사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가장 대표적인 족벌정치가문이라고 신문은 썼다.
신문은 지난해 11월 당선된 435명의 하원의원 가운데 최소한 41명이 '집안의 힘'의 지원을 받아 당선됐다고 분석했다. 세습정치가 가장 일반화한 일본은 2003년 11월 선거에서 대물림 의원은 122명으로, 전체의 4분의 1선이다.
신문은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세습되는 상원의원직 600석을 없애버린 것과 대조된다"며 "미국의 민주주의 상황은 루이 14세 시절의 프랑스 궁정에서 인조 가발만 쓰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신문은 정치집안의 후보가 지명도를 손쉽게 높이고, 정치자금 모금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을 대물림 현상의 요인으로 꼽았다. 또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티븐 헤스 연구원은 "정치인의 자녀는 어릴 때부터 리더십에 대한 가족의 기대감과 직접 목격한 정치현장의 경험도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행정부 내 고위직이 3000개에 이르는 미국에선 정부관리에도 부모의 후광이 작용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아들(마이클 파월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딸(보건복지부 감사 책임자), 안토닌 스칼리아 대법관의 아들(노동부의 최고위직 가운데 한 자리) 딕 체니 부통령의 딸과 사위(국무부와 법무부의 요직), 미치 매코넬 상원의원의 부인(일레인 차오의 노동장관)이 공직에 기용됐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