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들의 맏형 격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흔들리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경련 회장 직을 고사(固辭)하는 바람에 차기 회장 선출이 난관에 부닥쳤고, LG 현대자동차 등 다른 실세 그룹들은 전경련에 등을 돌린 지 오래다.
대그룹 총수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회장 선출에 어려움을 겪거나 정부와의 갈등으로 위기를 맞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전경련은 40여 년간 재계를 대표해 왔지만 정치권과의 미묘한 관계 때문에 회장 선출 때마다 우여곡절을 겪었다. ‘전경련 회장 자리는 하고 싶다고 하고,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고(故) 최종현 SK 회장은 전경련 회장 시절 김영삼 정부의 재벌 소유분산 정책 등 각종 규제를 비판하다 SK그룹이 대대적인 세무조사와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받았다.
1980년대 초반에는 전두환 정권의 눈 밖에 난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에서 물러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다.
그렇긴 하지만 요즘의 전경련 위기는 더욱 뿌리가 깊고 범위도 넓은 것 같다. 안으로는 회원사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해 ‘전경련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밖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전경련을 ‘정경유착과 정치자금의 온상’이라 비난하며 해체하라고 주장한다.
전경련은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한 압축 경제성장의 산증인이다. 5·16군사정변 이후 정부에 대한 재계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해외차관 도입이나 산업공단 조성 등 굵직한 사업들을 주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룹 간 거래와 담합, 정치자금 조성과 전달 등 부정적인 일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한국 경제가 관 주도의 독점 체제로부터 민간 중심의 개방 경제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전경련의 위상과 역할이 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전경련이 해체되거나 단순히 그룹 총수들의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와 사회에서 대기업들이 해야 할 역할이 아직도 크기 때문이다. 노동계나 시민단체 등 다른 민간단체들의 위상이 높아진 지금, 대기업들의 입장에서 한국 경제의 방향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필요하다. 개별 대기업이 하기 힘든 중소기업 지원이나 기업윤리 확산 등 사회에 기여할 몫도 많다.
대한상공회의소나 무역협회 등이 법정단체로서 정부의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반면 전경련은 순수 민간단체라는 강점도 있다.
최근 싱크탱크로의 전환 등 전경련의 변신을 위한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시대가 바뀌면 조직도 달라져야 한다. 전경련이 몇몇 그룹의 이익만 대변하는 데서 벗어나 더욱 보편적인 시장경제 원리의 전파자로, 사회적 공공자산을 생산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