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선진국 한번 만들어 보자는 소리가 이어진다. 정치권에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선진화를 조금 먼저 꺼낸 한나라당이 주거니 받거니 한다.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실현을 내건 뉴 라이트(New Right·신우파) 운동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이에 가세한다.
하지만 이들의 ‘선진 한국’ 외침은 많은 국민의 호응을 아직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이 워낙 어려워 선진이란 말 자체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특히 정권 측이 2, 3년 안에 선진국을 이뤄낼 듯이 말은 크게 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설계를 보여 주지 못하니 국민의 감흥이 더욱 약하다.
사정이 이렇긴 해도 선진화 합창의 마이크를 끄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경제와 민생 살리기가 급할수록 선진에 초점을 맞춰 해법을 찾는 게 사실은 ‘질러가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선진국 진입은 과거를 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들다. 그렇다고 포기하거나, 과거사 논쟁이나 하며 지새운다면 나라의 현상유지는커녕 후진을 면할 수 없다.
▼누가 선진화 세력의 주류 될 건가▼
우선 ‘선진 한국’이라는 화두를 국민 속에서 심화시키고 구체화하는 일이 중요하다. 누가 이런 역할을 할 것인가. 각각 선진화 견인역을 자임하고 나선 여야 정치권과 ‘뉴 라이트’의 삼각경쟁 및 협력을 기대해 볼 만하다. ‘시민단체 중에선 왜 뉴 라이트만 꼽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대안을 들고 나와 경쟁에 합세하면 될 일이다.
지난해 태동한 뉴 라이트 운동은 올해 들어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한다. 자유주의연대, 기독교사회책임, 교과서포럼,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바른 교육권 실천행동,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등의 대표들이 지난주에 모였다. 거기서 ‘선진 한국을 실현할 시대정신을 정립하는 가치관 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펼쳐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3월까지 뉴 라이트 연대기구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치의 중심에 두는 민주화 세력과 국가 통제가 아닌 자유시장을 중시하는 산업화 세력’을 포함한 신세력, 즉 선진화 세력의 시대를 열겠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에서 선진화 전략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부패 죄의식과 비주류 열등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권력에 대한 견제기능을 상실한 기존 시민단체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전문가 정신을 치열하게 발휘한다면 여야 정치권과 멋진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 정권은 뉴 라이트의 가치관과 여러 면에서 부닥치는 코드를 갖고 있다. 뉴 라이트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통한 선진화를 추구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큰 정부, 국가 주도’의 성향을 보인다. 또 법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뉴 라이트는 ‘헌법의 규범적 가치 수호’를 정권 측보다 훨씬 더 강조한다. 대북 관계에 있어서는 북한 동포와의 공조와 북한 정권과의 공조라는 차이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권 측은 물론이고 정권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뉴 라이트 운동을 극력 폄훼하고 이들의 선진화 전략에 대해서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구체전략으로 국민 검증 받아야▼
한나라당의 경우는 뉴 라이트와 공유하는 가치가 여권(與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많다. 하지만 뉴 라이트는 한나라당의 보수에 대해 ‘획기적 자기 개혁 없이는 시대의 가치로 살아남을 수 없다’고 본다.
정치집단이건, 시민사회단체건 국민 앞에서 선의의 생존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그런 점에서 여건, 야건, 뉴 라이트건, 선진화 주도세력을 꿈꾸는 제4그룹이건 자신들의 경쟁력 있는 전략을 최대한 내놓고 국민의 검증을 받아 적자생존을 꾀해야 한다.
정치적 기반이 없는 뉴 라이트는 정치권보다 우월한 도덕성, 법치에 대한 실천적 적응력, 민심을 훨씬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입지 등을 특혜로 생각하면서 선진화 드라이브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배인준 수석 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