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1000건에 이르는 규제개혁 과제를 선정해 그 추진 일정을 발표했다. 규제개혁은 역대 정부에서도 수없이 추진됐으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등에서 30년 가까이 토지 관련 법률을 제정·개정하는 일을 실무적으로 수행하면서 수없이 고민해 봤다. 가장 큰 문제는 현행 토지관계법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입법돼 체계적인 토지정책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행정 활동의 근거가 되는 각종 법령이 소관 행정부처에 소속되다 보니 부처의 필요나 이기주의에 의해 제정·개정·폐지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관련 법령이 많아지고 기준이 서로 달라 국민의 처지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제활동에 대해 중복 내지 유사한 규제를 겪게 된다.
예컨대 댐의 경우 다목적댐은 특정다목적댐법에, 발전용 댐은 전기사업법에, 용수전용 댐은 수도법 또는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에, 상수도 전용 댐은 수도법에 따라 건설되는 식이다. 소관 부처 위주의 입법 방식을 버리고 국회가 관련 위원회의 협의 방식을 통해 입법하거나 댐과 가장 관련이 깊은 부처에서 전담토록 법령의 체계화, 소관 부처의 단일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법령 정비에 따라 법령이 다른 부처로 이관될 경우 규제 사무도 담당 기관으로 이관해야 하고, 국토건설과 환경보호 등 각 부처 간의 업무영역 상 규제 법령의 양립이 불가피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대국민 창구를 일원화하거나 단순화해야 한다.
현재 공장 설립의 경우 공장 설립 신고(산업자원부), 국토계획 변경(건설교통부), 낙농지구지정 해제(농림부), 국유재산 사용(재정경제부) 등 20여개의 신고 허가 해제 면허 동의 결정 등을 받아야 한다. 해당 업무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최종적으로 이뤄지는 경우에는 해당 규제 사무의 지방 이양을 적극 추진하고, 이양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규제 사무의 접수창구는 지자체로 일원화하도록 업무영역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아일랜드의 산업개발청(IDA)은 외자유치를 위해선 업무 영역과 관계없이 주택과 자녀 취학까지도 원스톱으로 서비스 해 주고 있다.
행정규제의 주체 및 내용, 절차에도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행정부처의 자의가 개입될 수밖에 없고 예측가능성과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
토지의 용도를 지정하는 용도지역 지정 방식 역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최근 일부 지역에 대한 그린벨트 또는 신고구역 해제 등에 따른 지가 변동을 보면서 그간 우리의 용도지역 지정 자체가 지가 체계를 왜곡해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현행 국토계획법에 일부 반영되어 있지만 국토 이용 형태의 배열을 용도지역이 아니라 국토의 자연질서에 따라 도시 농촌 산림구역으로 나누고, 계획체계도 전국 계획과 지역 계획의 두 가지로만 분류하는 계획중심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규제개혁이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흐를 경우 해당 법령은 그 실효성을 잃게 되고 개혁의 목적도 달성할 수 없는 편법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규제개혁은 기존 제도의 가감을 통한 의제 규정 수준의 정비가 아니라 행정부처의 업무 전반을 재검토해 중복 부서, 유사 부서 등의 통폐합을 포함한 전면적 행정부 개편으로 이어져야 그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손성태 신행정수도 자문위원 도시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