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계약 파기를 요구했던 임창용(삼성) 파문. 사상 유례가 없는 이 해프닝은 몸값 책정과 관련한 섭섭함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했다.
임창용은 그동안 줄기차게 최고 몸값을 주장해 왔다. 초창기 삼성에 흘린 4년 90억 원은 심정수가 4년간 최대 60억 원을 받은 데 대한 보상심리. 해외진출이 무산돼 어쩔 수 없이 국내로 발길을 돌리긴 했지만 그래도 4년간 최대 39억 원이 보장된 박진만보다는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들은 투수가 아닌 타자. 그동안 국내 프로야구에선 박철순 최동원 선동렬 정민태로 이어지는 투수들이 연봉 킹을 차지해 왔다.
그러나 투수가 타자보다 반드시 연봉이 많아야 할까. 메이저리그로 고개를 돌려보자. 며칠 전 현역 최고의 소방수인 에릭 가니에는 연봉조정을 피하는 대신 2년간 1900만 달러에 LA다저스와 계약해 사상 최초의 연평균 1000만 달러 마무리 투수 기록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 휴스턴의 노장 로저 클레멘스는 1년간 1800만 달러에 계약함으로써 비로소 투수 최고 연봉을 받게 됐다. 그래도 10년간 2억5200만 달러를 받는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에 비하면 훨씬 적은 액수다.
미국에선 투수가 야수에 비해 몸값이 낮은 게 관례. 아무리 야구가 투수놀음이라고 해도 포스트시즌이 아닌 페넌트레이스에서의 팀 공헌도와 관중동원 능력은 매일 나오는 야수가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수비를 하지 않는 지명타자의 몸값이 턱없이 낮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임창용은 더 이상 실망과 분노로 자신을 스스로 망칠 이유가 없다. 2년간 계약금 8억 원에 연봉 5억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지난해와 같은 활약을 할 경우 연 평균 플러스 옵션 1억5000만 원을 더해 2년간 최대 21억 원을 움켜쥘 수 있다. 이는 4년으로 환산하면 박진만을 능가한다. 4년이 아닌 2년 계약을 한 것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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