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문예진흥원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만파식적’은 한국 연극계의 대표적 연출가 오태석 씨가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이 작품에는 납북된 뒤 생사조차 모르는 아버지, 이산가족으로 살다가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 등 그의 개인사가 반영돼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덤에서나마 아버지 곁에 묻히셨으면 한다”는 그의 소망은 주인공인 종수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묏자리 옆에 빈 관(棺)을 하나 더 놓는 도입부에 녹아 있다. 북쪽 아버지의 유골이라도 모셔다 어머니 곁에 누이겠다는 종수의 다짐과 함께 이야기는 어느새 삼국시대와 현재, 남과 북 등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설화와 현실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오 씨의 작품이 대부분 그렇듯 ‘만파식적’ 역시 설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만파식적(萬波息笛)’은 불기만 하면 나라가 평안해진다는 마술 피리다. 둘로 갈라져 있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소리를 내는 만파식적을,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현실에 빗댔다.
북한을 방문한 종수는 이복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된다. 북측 형제들 눈에 비친 남조선 사회의 모습을 통해 이 연극은 빈부격차, 공동화되어 가는 농촌,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 등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슬쩍 짚어 낸다. 종수는 형제들에게서 “남조선이 더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을 증명한 뒤 아버지를 모셔가라”는 요구를 받는다.
오 씨는 지하철역에 놓여 있는 무료 대여 우산을 아무도 돌려주지 않는 설정을 통해 이기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과 도덕이 사라진 현실을 희화적으로 꼬집는다. 단순한 상황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일침을 놓는 부분에서 연출가의 관록 있는 시선이 빛난다. 그러나 우산을 놓고 벌어지는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메시지는 힘을 잃었다. 무엇보다 ‘만파식적’의 이야기가 뚜렷이 전달되지 않고 설화와 현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아 관객에게 다소 난해하게 비치는 점이 아쉽다.
오태석의 작품은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숙성 기간’을 필요로 한다. ‘만파식적’ 역시 ‘제 맛’을 내기까지는 다소 기다림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2월 12일까지. 화 수 목 오후 7시 반, 금 토 오후 4시 반 7시 반, 일 오후 3시 6시. 2만∼3만 원. 02-765-789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 기자인 선승혜 씨(서울대 언론정보학과 2년)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