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는 ‘100억 달러 클럽’이라는 말이 화제다. ‘100억 달러 클럽’은 연간 순이익이 100억 달러가 넘는 기업을 일컫는 말. 특히 삼성전자가 지난해 국내 기업 최초로 순이익 100억 달러를 돌파하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이라도 순이익이 100억 달러가 넘는 곳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100억 달러 클럽’엔 어떤 기업이 있는지, 기업의 순이익이 100억 달러를 넘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봤다.》
“삼성전자 쇼크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14일 삼성전자가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후 일본에선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조7900억 원의 순이익을 냈는데 이를 달러화로 환산하면 약 103억3000만 달러. 한국 기업 최초로 ‘100억 달러 클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소니 히타치 후지쓰 등 일본의 10대 전기 전자 메이커의 순이익을 모두 합쳐도 삼성전자의 절반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일본에 큰 충격을 주었다. ‘순이익 100억 달러’의 힘은 그토록 대단했다.
▽‘100억 달러 클럽’의 면면=지난해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이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의 순이익 실적을 보면 2003년에 100억 달러를 넘은 기업은 총 8개. 통신업체인 MCI가 222억 달러로 1위에 올라 있고 엑손모빌, 씨티그룹, GE, 로열 더치 셸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거인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99억9000만 달러로 아깝게 들어오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영업 활동을 한 기업 가운데 순이익 100억 달러를 넘긴 곳은 7개뿐이다. MCI는 2002년 대규모 회계부정 사태가 불거지면서 파산한 월드컴의 새 이름. 2003년에는 파산보호 절차 도중이라 특별이익이 발생해 순이익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엑손모빌과 로열 더치 셸, BP는 유명한 석유 메이저들. 이들 기업은 석유 개발에서 수송, 정제, 판매에 이르기까지 석유 산업의 모든 부문에 참여한다. 석유 산업의 특성상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측면이 강해 매출과 순이익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있다. 특히 2003년에는 이라크전쟁의 영향으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으로 치솟으며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봤다.
씨티그룹과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잘 알려진 금융 기업이고 GE 역시 금융 기업으로 분류된다. GE는 발전 설비와 항공기 엔진 등 사업 분야가 다양하지만 금융 부문의 매출과 순이익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된다. 일반적으로 금융을 비롯한 서비스 업종이 제조업보다 이익률이 높다.
순수한 의미의 제조업체 가운데 순이익만 100억 달러를 넘긴 기업은 도요타자동차뿐이다. 도요타는 102억9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는데 이는 경쟁 업체인 GM보다 3배 많은 수치. ‘끊임없는 개선’으로 요약되는 ‘도요타 방식’이 빛을 발했다.
▽순이익 100억 달러의 의미=세계적으로 수많은 기업이 있지만 단 한번이라도 순이익이 100억 달러를 넘은 기업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최고의 기업하면 늘 첫손에 꼽히는 월마트의 2003년 순이익이 100억 달러가 안 되는 것을 보면 ‘100억 달러 클럽’의 문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기업이 한 해 100억 달러의 순이익을 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100억 달러 클럽’은 단순한 레토릭(수사학)인가, 아니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인가.
김성표(金成杓)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순이익 규모가 100억 달러라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기업으로 정착했다는 의미”라며 “경영의 모든 프로세스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순이익 순위가 높은 기업 가운데에는 독특한 경영 모델로 유명한 경우가 많다. ‘GE 웨이’니 ‘도요타 방식’이니 하는 게 그런 것이다.
황창규(黃昌圭)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삼성전자가 순이익 100억 달러를 넘었다는 것은 이제 비로소 시장을 이끄는 힘을 갖게 됐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순수 제조업체가 순이익 100억 달러를 올리려면 단순히 덩치만 키워선 안 된다. 제품의 기술력이나 마케팅 능력은 물론이고 생산 공정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원가를 줄여야 한다.
▽삼성전자의 힘=삼성전자의 ‘100억 달러 클럽’ 진입은 지난해 IT 시장 상황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데서 더욱 돋보인다. 삼성전자의 순이익 가운데 반도체 부문이 75%가량을 차지했는데 지난해 반도체 가격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100억 달러 클럽에 진입한 기업이 나왔다는 것도 뉴스다. 기업의 성과는 해당 업체가 경영을 잘하느냐와 함께 경영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은 노동 시장, 지식 기반, 금융 시스템 등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한 인프라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선진국보다 나은 게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100억 달러 클럽’에 계속 남을 수 있을까.
황 사장은 “사업 부문간 시너지 효과가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올해의 실적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GE, 1999년 100억달러 1호…엑손-씨티와 선두 경쟁▼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천은 매년 기업의 실적 순위를 발표한다. 이를 연대별로 살펴보면 기업 순이익이 지금까지 얼마나 증가해왔는지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순이익 10억 달러를 돌파한 기업은 미국 자동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GM은 1955년 124억 달러의 매출에 12억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다.
이후 기업의 순이익은 매년 꾸준히 늘어왔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최대 50억 달러 선에 머물렀다. 100억 달러의 문턱을 넘는 데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100억 달러 클럽’의 첫 테이프를 끊은 기업은 GE.
GE는 1999년 순이익 107억 달러를 내며 처음으로 순이익 1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1980년대 이후 잭 웰치 회장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혁신에 나서면서 저력을 쌓았다. 이전에도 회계장부상으로 100억 달러를 기록한 기업이 일부 있었지만 제대로 영업을 해서 100억 달러를 넘긴 것은 GE가 처음. 이 회사는 이후 지금까지 줄곧 ‘100억 달러 클럽’의 멤버로 남아 있다.
엑손모빌과 씨티그룹이 클럽의 문을 두드린 것은 다음해인 2000년. 이후 세 기업은 서로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클럽을 계속 지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주목을 받았던 정보기술(IT) 업계에선 특별히 눈에 띄는 기업이 없다. 2000년 통신업체인 버라이존이 647억 달러의 매출에 118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고 같은 해 인텔이 337억 달러 매출에 105억 달러의 순이익을 내면서 잠깐 얼굴을 비쳤을 뿐이다. 시가 총액으로 치면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마이크로소프트도 순이익 규모만 놓고 보면 90억 달러 선에서 맴돌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